[소년중앙] 바스락바스락…도토리 따기보다 가을의 소리 즐기세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일교차가 심할 때입니다. 갑자기 기온이 뚝뚝 떨어지며 금세 겨울이 코앞에 올 것 같네요. 우리가 외투를 챙겨 입고 목도리를 두르듯 식물들도 겨울을 준비합니다. 이 시기 나무들은 주로 단풍이 든 잎을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뜨려요. ‘낙엽’이라고 부르죠. 낙엽은 여러 미소생물들에 의해 분해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의 생명들도 순환을 하죠.
가을엔 왠지 쓸쓸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너무 혼자 틀어박혀 지내지 말고 여유를 내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발바닥 아래로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낙엽의 소리와 감촉이 몸을 타고 와서 더욱더 가을을 만끽하게 해주거든요. 낙엽수라고 하는 나무 중 우리가 주로 만나게 되는 건 참나무 종류입니다. 이번에는 참나무 중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상수리나무를 만나볼까 해요.
우리나라 토종 참나무 중에는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제일 굵고 실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상수리나무 도토리를 많이 주워다 햇볕에 잘 말려 가루를 내 묵을 쒀 먹어요. 둥글둥글한 상수리나무의 도토리는 긴 돌기 모양의 비늘잎으로 감싸인 깍정이를 모자처럼 쓰고 있죠. 상수리나무 이름의 유래를 이 묵에서 찾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백성들이 바친 도토리묵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매일 수라상에 올리라고 했다는 이야기인데요. 매일 수라상에 올라서 ‘항상 상(常)’자를 넣어서 ‘상수라’라고 부르던 것이 이후 상수리가 되었다는 거죠. 재미는 있지만 실제 역사에는 그런 기록은 없어요. 사람들이 후세에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죠.
상수리나무는 한자로 ‘상수(橡樹)’라고 합니다. 상수리나무 ‘상(橡)’자를 보면 나무 ‘목(木)’에 코끼리 ‘상(象)’자가 있죠. 나무껍질의 무늬가 코끼리의 피부를 연상시켜서 그렇게 만들어진 글자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상수리나무 열매를 ‘상실(橡實)’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상실이’ ‘상시리’라고 불렀습니다. 상시리나무가 상수리나무가 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지요. 나무 이름의 유래가 불분명하다 보니 전설이나 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넣어서 재미있고 외우기도 쉽게 하는 것은 좋으나 역사적인 이야기로까지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요.
상수리나무의 학명은 ‘Quercusa cutissima’인데요. ‘Quercus’는 참나무를 뜻하고 ‘acutissima’는 상수리나무를 뜻해요. 단어를 쪼개 보면 ‘acute’에 ‘예리하다’ ‘예민하다’란 뜻이 있는데, 아마도 다른 참나무에 비해서 잎이 뾰족하고 톱니 끝에 가시가 나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로도 ‘sawtooth oak’라고 해서 ‘톱니’가 강조됐죠. 가장자리에 엽록소가 없어 노란빛이 나는 길고 날카로운 잔톱니는 비슷하게 생긴 굴참나무와 구분하기 좋은 특징이기도 합니다.
상수리나무를 숲에서 만나게 되면 신기하게도 다른 나무에는 없는 상처를 볼 수 있어요. 왜 상처가 생긴 걸까요? 사람들이 도토리를 많이 따기 위해서 떡메나 큰 돌로 나무를 때려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자주 나무를 때리다 보면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계속 커지게 되죠.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는 나무지만 앞날을 생각지 않고 무조건 얻어가려고만 한다면 언젠가 그 이로움을 못 얻게 되는 때도 오겠지요. 함께 지속 가능하게 오래오래 살아야겠습니다.
상수리나무에는 이외에도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심으며 아껴 왔거든요. 나뭇결이 곧고 무거우며 단단해서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들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장작과 숯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열매는 묵뿐만 아니라 약과 염료로도 쓰고, 나무껍질도 상목피(橡木皮)라며 약용하고, 잎은 누에에게 먹이는 등 다양하게 사용되어서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가을엔 모두 잊고 그저 바스락바스락하고 노란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진 상수리나무 잎이 가득한 숲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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