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세계 교회사 “거룩한 지혜의 신비를 알게 하소서”

신상목 2024. 11. 18.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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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더미션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아침 쌀쌀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포근한 날씨 속에서 만추(滿秋)를 즐겼는데요.
오늘부터는 ‘제철 날씨’를 실감하면서 겨울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벌써 곳곳에 성탄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도했던 그 별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스타’ 되시는 주님을 나타내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서 평화를 추구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구하기를 기도합니다.

더미션 18일자엔 이렇게 추운 날 마음도 쓸쓸하고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조명했습니다.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고독사도 꾸준히 늘고 있고요. 홀로 사는 30대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럴 때 교회 공동체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소중합니다.
더미션 기획에서는 고독 사회의 현실을 짚어보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합니다.

이밖에도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돌려주는 한 작은 교회 이야기, 목사 이외에도 교인이라면 모두 경청하고 공감하는 돌봄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제안들, 40대 초반에 대구 범어교회 담임으로 목회하는 이지훈 목사 이야기 등을 만나보세요.

1874년 11월 18일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여성 기독교 절제 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개신교 회원들은 성령의 능력을 주장하며 술집으로 행진해 술집 문을 닫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단체는 1900년 이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절제 단체이자 가장 큰 여성 단체였습니다.

칼뱅의 성시화 도시, 제네바 개혁
1541년 11월 20일 스위스에서 프랑스의 개혁자 장 칼뱅이 32세 때 제네바에 신정 정부를 수립해 유럽 전역에 신흥 개신교의 본거지를 만들었습니다. 칼뱅의 첫 작업은 ‘교회 조례’ 작성이었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제네바교회는 주로 당회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회의 구성원은 목사와 평신도 장로들이었습니다. 교회 조례는 교회의 사역을 네 개의 직분으로 조직했는데 칼뱅은 이는 신약성경의 관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들은 말씀과 성례 사역이란 책임을, 교사 또는 박사들은 신앙 공동체 전체(아이와 어른)의 교육을 맡았습니다. 장로들은 이웃 종교 생활을 감독하며 죄지은 사람들을 권면하되 만일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으려 할 경우 당회에 보고했습니다. 집사는 교회의 사회봉사를 맡았습니다. 1559년 칼뱅은 평생소원이었던 ‘제네바 학당(Geneva Academy)’을 설립했습니다. 학당의 교장은 테오도르 베자였습니다. 이 학교는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에게 칼뱅주의 원리에 따라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졸업생들은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칼뱅주의를 퍼뜨렸습니다.

제네바 학당에서 칼뱅은 날마다 성경 강의를 시작하며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덕을 세우기 위해 우리가 더욱 경건해지고 하나님이 소유한 거룩한 지혜의 신비를 아는 것을 주께서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C S 루이스 별세
1963년 11월 22일 영국의 학자이자 작가인 C S 루이스가 올더스 헉슬리, 존 F 케네디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납니다. 루이스는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습니다. 작품으로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예기치 못한 기쁨’ ‘천국과 지옥의 이혼’ ‘헤아려 본 슬픔’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영광의 무게’ ‘피고석의 하나님’ ‘나니아 연대기’ 등이 있습니다.

루이스는 영미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에서 자주 인용하는 대표적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시대 기독교 사상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입니다. 1947년 9월 시사주간 ‘타임’은 루이스를 표지 인물로 다루면서 ‘금세기 가장 많이 읽힌 기독교 변증가’라고 칭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 별세
101년 11월 23일(전통적인 날짜) 로마의 클레멘트가 사망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닻에 묶여 바다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클레멘트는 ‘최초의 사도 교부’로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란 신약성경 27권 저자에 들지 않은 초기 기독교 주요 문서의 집필자들에 대한 명칭입니다. 사도 시대 이후 교회의 가르침을 계승 발전시켜온 교회 지도자 및 학자들을 가리킵니다. 클레멘트는 당시 교회가 처했던 특수하고 구체적인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가 남긴 ‘고린도 교인에게 보내는 편지’(Epistle to the Corinthians)는 3~4세기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또 교회법의 가장 큰 모음집인 사도 헌법을 저술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파스칼의 기독교 개종
1654년 11월 23일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 신비로운 환상을 경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그는 최초의 손목시계, 최초의 버스 노선, 최초의 계산기 등을 발명했습니다. 인본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격변의 시대를 산 지식인이었던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쳐 이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회심했습니다.

이후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을 미신적이고 반이성적이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종교라고 여기는 동시대 교양인들에게 이성의 밝은 빛 속에서 신앙을 다시 소개할 필요성을 느껴 ‘팡세’를 집필했습니다. 팡세의 메시지는 하나님 없는 인간은 매우 비참하며 하나님과 함께할 때 비로소 모든 불행과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파스칼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해 이 작품을 작성하다가 1662년 39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1771년 11월 24일 감리교의 프랜시스 애즈버리가 미국에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이후 45년 동안 그는 미국에 감리교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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