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사로 소형원전 뜬다…韓 '무탄소 연합' 힘 받나
원자력 발전이 인공지능(AI) 시대의 기후위기 해결사로 떠오르면서,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무탄소(CF) 연합'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올해는 원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17일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고 있는 COP29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에너지 발전량을 세배로 늘리겠다고 서명한 국가는 31개국으로 늘어났다. COP29 의장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미국, WNA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서 케냐ㆍ튀르키예ㆍ엘살바도르ㆍ카자흐스탄ㆍ코소보ㆍ나이지리아 등 6개국이 추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들 신규 선언 국가가 그간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은 국가이며, 반핵 운동가의 목소리가 컸던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간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던 튀르키예의 경우, 한국·중국 등과 원전 건설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튀르키예 에너지 및 원자력 기관의 압둘라 부그라한 카라벨리 대표는 NYT에 “전력 사용량이 매년 약 4%씩 증가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계획에서 원자력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힘을 실어온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COP29 개막 직후인 지난 12일 2050년까지 원전을 3배 발전시킬 구체적인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미 원전 기술을 발전시켜온 한국과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발전소 설립에 드는 시간, 핵폐기물·전력 계통 확보 등의 문제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미국 정부와 구글, 포스코, IAEA는 COP29의 원전 관련 토론회에서 SMR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규제 장벽에 대해 논의를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인공지능(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전력 때문에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미국 정부도 재생에너지와 함께 기존의 원전, 그리고 SMR 기술 발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업들도 전력 필요…원전 불가피”
원전에 대한 기류가 바뀌면서 정부가 지난해부터 주창해온 CF100(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에너지 100% 사용)도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지난해 COP28에 CF100을 들고 나왔지만,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이 CF100을 명목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소홀히 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아마존 같은 기업을 중심으로 SMR을 쓰겠다고 나오는 상황이고, 유럽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며 "기술은 가치 중립적인 것이고 나라마다 전력 지형이 다르기 때문에 CF100도 기업들이 향후 비즈니스를 할 때 국제 사회에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아제르바이잔으로 출국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EU, 싱가포르 등과의 양자 회담에서 CF100 가입을 권유할 것으로 보인다. CF100을 주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과 CF100을 공동 추진하며 체코·UAE 등 한국과 원전 기술 협력을 맺는 나라를 중심으로 워킹 그룹을 형성해 조금씩 진전을 이루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에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100%를 충당하는 RE100보다 CF100이 그나마 폭증하는 AI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SMR 기술이 아직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시급한 탄소감축을 미래의 SMR 기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훈 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 교수는 "미국의 빅테크를 중심으로 SMR 확보 움직임이 있지만, 실제 이를 통한 탄소감축 효과는 2035년 내로 보기 어렵다”며 “당장 상용화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방안을 더 무겁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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