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감싸던 시진핑이 달라졌다 "한반도 충돌∙혼란 용납 못한다"
15~16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을 압박하는 무대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각기 대면해 양자회담을 하면서도 대북·대러 영향력을 발휘하라고 조율된 메시지를 발신했다. 북한군의 실전 투입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시 주석이 참석하는 다자 정상회의를 기회로 한·미·일이 똘똘 뭉쳐 직접 이를 의제화한 것이다.
16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군 수천명이 러시아에 파병된 것은 유럽과 인도태평양 모두의 안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한 확전”이라고 비난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에) 영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 북한군이 추가 투입돼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확전이나 긴장 고조 행위는 없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는데, 북한군의 진입은 이러한 입장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한 간 협력이 심화하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며 “그것이 대한민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이든, 추가 미사일 실험이나 7차 핵실험이든, 우리는 이에 대해 계속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시 주석에게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느냐’고 직접 물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대남 도발은 한반도의 긴장 격화로 이어지고, 이런 과정에서 북한과 군사 원조 조약을 맺은 러시아의 개입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7차 핵실험은 중국이 중시하는 ‘동아시아 유일의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는 이전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의 북한 관련 언급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회담에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의지”를 강조했고, 2022년 11월엔 “북한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중국이 촉구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발언했다.
당시만 해도 다른 굵직한 현안들에 밀려 북한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는데, 파병이라는 무리수 감행으로 오히려 미·중 간 의제 중 우선순위가 높아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도 이런 상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우크라이나전 조기 종전에 수차례 의지를 보였는데, 북·러 간 결착의 고리를 끊는 건 이런 과정에서 필수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다소 의미심장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측은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시 주석이 “중국은 한반도의 충돌과 혼란을 용납할 수 없으며, 중국의 전략적 안보와 핵심이익이 위협받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나 러시아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의 충돌’ 언급은 단순히 한·미의 대북 확장억제 강화 등 뿐만 아니라 북·러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실제 이는 2년 전 미·중 회담 때와는 온도 차가 있다. 당시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직시하고,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를 균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북한을 두둔한 셈이다.
윤 대통령도 15일 시 주석과 2년 만의 정상회담에서 북한군 파병 문제를 제기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러·북 군사협력에 대응해 한·중 양국이 역내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데 협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과 관련,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했다고도 전했다. 한·미 정상이 하루 간격으로 시 주석을 만나 거의 동일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중국 역시 역내 정세의 완화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사자들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북·러 협력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측은 공식 발표에선 “윤 대통령이 공동의 도전에 함께 대응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만 밝혔다. 북한을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윤 대통령의 문제 제기 자체는 공개했다.
이시바 일본 총리도 15일 시 주석을 만나 “납치 문제를 포함한 북한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다. 시 주석은 14~16일 총 8개국 정상과 회담했는데, 한·미·일 외에 뉴질랜드도 이를 거론했다. 회담 상대 절반이 중국의 대북 역할을 촉구한 것이다. 뉴질랜드 외교부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럭슨 총리는 “북한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안보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이 보유한 영향력과 접근권을 활용하도록 독려”했다.
물론 이런 국제적 압박이 중국의 직접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이 북·러의 불법 행위에 가담하지 않도록 분리해내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전반적 평가다. 북·중·러가 한데 묶여 폭주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의 대중 메시지는 함께 모인 자리에서 더 강하게 발신됐다. 15일 3국 정상회의를 통해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파병을 거론하며 “북한과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러시아의 일방적 침략 전쟁을 위험하게 확대하기로 한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다자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회담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공동성명 도출 자체가 이례적이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약속한 대로 3국 정상회의 연례 개최를 통한 협력의 제도화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상징성이 크다. 3국 정상은 한·미·일 협력사무국 설치에도 합의했다.
16일에는 한·일 정상이 만나 한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 러·북 간의 군사 협력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단합된 메시지를 계속 발신할 수 있도록 양국이 더욱 긴밀히 공조하자”고 합의했다.
리마=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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