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윤 대통령에게 골프 연습보다 더 중요한 것

이하경 2024. 11. 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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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대기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백악관 집무실의 굴욕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Oval Office humiliation)’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에게 아첨(flattery)은 쓸모가 있지만 특효약은 아니다”는 것이 그를 경험한 외국 외교관들과 미국 관리들의 의견이었다. 트럼프는 바보(idiot)가 아니고, 상대가 강해야 그의 말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중요한 국가를 이끌고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정치적 권한이 있으면 강력하다고 생각한다”고 전직 미국 관리는 말했다. 아베 전 일본 총리, 모디 인도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거론했다.

반면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을 싫어했다”고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에펠탑에서 트럼프에게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대접했지만 구애(求愛)에 실패했던 이유였다.

「 트럼프에겐 아첨만으론 안 통해
주한미군 철수 추진 등 대처 위해
초당적 지지로 강한 권한 행사를
김 여사 특검 수용이 협조 출발점

우리 대통령은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강력한 지도자’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여야의 극단적 대결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상대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와 ‘골프 외교’를 하기 위해 8년 만에 골프채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자 “왜 당선되기도 전인 한·미 훈련 기간 중 골프장에 갔느냐”는 야당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추진하고, 한국을 패싱하면서 김정은과 위험천만한 핵 협상에 나설 때 대통령이 초당적 협조를 받을지 의문이다.

4개의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분열의 뇌관이다. 이 대표는 지난주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고, 국토교통부의 협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을 했다는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거짓말로 유권자를 오도하고 선거 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형이 확정되면 2027년 대선 재도전은 물 건너간다. 25일의 위증교사 1심 판결도 유죄 가능성이 높다. 입법 권력을 무기로 한 이 대표의 재판부 압박은 먹히지 않고 있다.

이재명 1인 지배체제인 민주당은 반격을 노리고 있다. 구속된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와 얽힌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은 좋은 사냥감이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대선 경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식 전날 “김영선이 (공천) 좀 해줘라”는 대통령의 육성이 폭로된 상태다. 윤 대통령의 “어쨌든 잘못했다”고 한 기자회견 이후에도 의혹은 불어나고 여론은 악화일로다.

사실상 퇴로가 없다. 민심이 요구하는 김 여사 특검을 수용하는 것이 순리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그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자신도 특검을 수용하고 정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내를 설득할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김 여사는 “내가 정권을 잡으면…”이라고 했고, 대통령 휴대폰으로 밤새도록 문자를 보낸 사람이다. 비상식적이다. 대선 전에 윤 후보에게 김 여사의 ‘근신’을 주문하는 문자를 보낸 뒤 연락이 끊긴 동창생은 “이걸 김 여사가 봤다니…”라며 탄식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김 여사가 특검을 받겠다고 해야 한다. 대선 때는 “내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억울하게 악마화됐다면 결백을 입증할 좋은 기회다. 안팎으로 위중한 시기에 남편이 힘을 얻고 성공하도록 하는 길이다.

트럼프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8월 한국에 왔지만 윤 대통령은 만나지 않았다. 1966년 야인 시절의 닉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홀대했다 겪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굴욕이 떠오른다. 박정희는 닉슨과 식사도 안 하고 커피 한잔 나눈 뒤 보냈다. 닉슨은 2년 뒤 대통령이 됐고, 1969년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박정희와 정상회담을 했다. 마중도 나오지 않고 호텔방에서 박정희를 맞았다. 고향 친구를 만찬에 동석시켰다. “아시아인의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닉슨독트린’ 발표 직후였지만 ‘주한미군이 감축 대상’이라는 중대한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닉슨의 복수였다. 윤 대통령이 초당적으로 상의했다면 정권 실세인 트럼프의 장남을 당연히 만났을 것이다. 요즘 트럼프 인맥을 찾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아쉬울 뿐이다.

골프광인 트럼프를 상대할 대통령에게 골프 연습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강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굴욕을 피하고 국익을 지킬 수 있다. 먼저 김 여사 특검이 이뤄져야 한다. 민심이 움직이면 야당도 어쩔 수 없이 협조 모드로 전환할 것이다. 퇴임 후로 미루면 훨씬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늦기 전에 당사자가 결단해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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