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재판이 되어버린 이재명 선고 생중계 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배타적이고 확실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군중 심리를 잘 읽고 활용한다.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긴 했지만 이 대표처럼 여러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는 처지였다. 두 사람 모두 수사와 기소를 정치적 탄압이라는 주장으로 대응해 왔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이 대표는 “민주당이 계속 ‘먹사니즘’ 얘기를 하는 대한민국 상황과도 맞닿아있다”며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지난 15일 이뤄진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1심 선고를 앞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트럼프와 이 대표를 비교했다. 민주당 측이 이 대표와 트럼프의 비슷한 점을 거론하는 걸 꼬집으면서 “트럼프는 2023년 11월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 등을 이유로 재판을 공개하자고 당당하게 요구한 바 있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생중계는 망신 주기나 다름없다”(전현희), “피고인에 대한 어쨌든 명예훼손”(정성호)과 같은 재판 생중계 반대 주장을 폈다. 여당에서는 추경호 원내 대표와 여러 인사가 “무죄를 확신한다면 생중계를 요청하라”고 가세했다. 이 대표는 생중계 여부에 대한 입장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한 대표 말처럼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의회 폭동을 부추겨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 한 혐의에 대한 재판을 생중계해달라고 요청했다. 오히려 법원이 이를 거부했다. 무죄 확신과는 별개로 트럼프는 재판 중계를 활용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그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 대선에 활용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2020년 대선 때 조지아주 투표 결과를 전복하려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사안을 맡은 조지아 풀턴 카운티 법원은 재판을 생중계해 왔다. 미국에서는 워싱턴DC를 제외한 50개 주에서 주요 재판을 중계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에 무게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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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 찬반 주장으로 법원 압박
미국은 50개 주 ‘알 권리’ 더 중시
기준 구체화해 판사 부담 덜어야
」
논란이 된 이 대표에 대한 선고 생중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관련되는 법익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공개변론은 2013년부터 중계방송할 수 있다. 2017년부터는 1, 2심 재판도 생중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칙이 개정됐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을 공개하라는 법원 안팎의 요구가 있어서였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에게 설문한 결과 참여자의 73%가 찬성하기도 했다. 이후 1심 선고가 생중계된 건 2018년 4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 그해 7월 박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재판, 그리고 그해 10월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횡령ㆍ뇌물 사건뿐이다. 두 사람 모두 생중계를 반대했지만 법원이 허가했다. 다른 사례가 없다 보니 마치 생중계를 하면 두 전직 대통령처럼 유죄 선고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굳어진 듯하다.
법원은 근래 1, 2심 재판 생중계를 하지 않는 이유가 헌법상 피고인의 권리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 침해되고, 여론재판의 우려가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담당 재판부가 느끼는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경우 2022년 9월 기소돼 1심 선고까지 2년 2개월 걸렸다. 1심 재판을 6개월 이내 끝내야 한다는 선거법 강행규정을 어겨도 한참 어겼다. 올해 1월에는 이 사건을 심리해 온 부장판사가 갑자기 사표를 내 두 달 정도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실질적 재판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엄청난 정신적 압박에 시달렸다는 말이 들린다. 판사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런 사건에 대해 선고와 더불어 생중계 여부까지 판단하라면 오죽하겠나.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말고도 위증교사, 대장동ㆍ백현동 개발 비리, 불법 대북송금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 당장 25일 있을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를 두고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생중계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이 대표가 트럼프처럼 생중계를 요청할 것 같지도 않고, 요청한다 한들 재판부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하급심 생중계 시행과 관련해서는 더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 국민의 알 권리나 공익 차원이라는 모호한 기준보다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인물이나 사건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결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법원의 판결에 정치적 색깔을 입히려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담당 재판부가 전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건 또 다른 재판 부담을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안에 따라 정치ㆍ사회적 논란이 커질 가능성을 방치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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