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행복한 새벽의 옛 도성, 수코타이
13세기 초 몽골 침략 때 타이족은 인도차이나반도로 남하했고 당시 동남아시아의 패자인 크메르의 영토에 정착했다. 1238년 내륙 무역도시 수코타이에 소박한 독립 왕국을 세웠고 3대 람캄행 대왕(재위 1279~1298) 때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기존 힌두교를 배척하고 테라바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고유한 타이 문자를 제정했다. 수코타이 왕국은 타이족 최초의 왕조로 현대 태국의 기원이 되었다.
수도 수코타이의 중심에 동서 2㎞, 남북 1.6㎞의 내성을 쌓았다. 사방을 해자와 이중 성벽을 두르고 이 안에 왕궁과 10여 개소의 불교사원을 세웠다. 태국의 젖줄 차오프라야 강물을 끌어들여 곳곳에 호수를 파고 운하로 연결해 물속에 피어난 이상적인 불교 도시를 조성했다. 15세기 후발 왕조인 아유타야 왕국에 복속되어 수도의 지위를 잃고, 버마족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이 옛 수도는 193개의 유적지를 담은 광활한 역사공원으로 보존되고 있다.
절터들은 불탑인 체디와 법당인 비한의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위대한 유물의 사원’이라는 왓 마하탓은 큰 탑 주변 8방에 작은 탑을 세워 부처의 세계, 만다라를 조성했다. 연꽃 봉오리 모양의 큰 탑은 수코타이 양식의 대표작이며, 8방의 작은 탑들은 북부의 란나 양식과 크메르 양식이 섞여 문화적 교류도 보여준다. 왓 사시에는 타이 예술의 백미라는 ‘걷는 부처’가 유려한 포즈로 걸어가고 있다. 가장 오래된 왓 씨사와이는 원래 크메르 힌두사원이었다. 옥수수 모양의 3개의 탑, 프랑은 힌두교의 3신인 브라흐마·비슈뉴·시바에게 봉헌된 것이었으나 불교화된 역사적 흔적이다.
지붕이 사라진 법당의 열주들과 불탑들이 설치 작품같이 산재하고 사이사이 불상들이 신비한 미소를 짓고 있다. 호수에 비추어진 반영들이 먼 산과 함께 연꽃과 어우러진다. 수코타이의 폐허는 ‘영원한 행복의 새벽’이라는 의미대로 인류의 영원한 보물로, 행복과 평화가 충만한 공원으로 남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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