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2년반 전보다 나아졌나

김현길 2024. 11. 1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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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연수를 위해 미국에 도착해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마트들을 구경삼아 돌아보다 '알디(ALDI)'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이들 자료를 모으면 한국은 지난 2년반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물가 흐름 속에서 어느 때보다 양호한 고용으로,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은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에서 사상 처음 일본을 넘어선 국가다.

지금 한국 경제 상황에서 '2년반 전보다 나아졌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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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경제부 차장


지난해 초 연수를 위해 미국에 도착해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마트들을 구경삼아 돌아보다 ‘알디(ALDI)’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독일계 마트 알디는 낮은 가격에도 품질이 나쁘지 않아 미국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 옆에 선 그 노인은 혼잣말처럼 달라진 가격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보다 낮은 가격이었는데, 지금 가격이 말이 되느냐는 게 요지였다. 연수 1년간 높은 물가, 그 노인은 몰랐을 고환율의 이중고를 체감할 수 있었다.

미 대선 결과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경제, 그중에서도 물가다. ‘미국만 잘나간다’는 평가와 달리 미국 내에선 불만이 컸는데 물가가 주원인이란 설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 4년간 가장 많은 1600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률도 선방했지만 체감경기는 달랐던 모양이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고점도 미국(9.1%)이 유로존(10.6%)이나 영국(11.1%)보다 낮았지만 집권 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4년 전보다 생활이 나아졌느냐’는 물음으로 밑바닥 민심과 거시경제지표 사이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44년 전 백중세였던 선거의 균형을 무너뜨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뇌리에 꽂히는 질문을 다시 받은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트럼프였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내일의 구호에 공감하기보다 ‘오늘의 고단함’에 절망한 유권자들이 그만큼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대선 이후 한국 경제엔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주가는 급격히 빠졌고 환율은 치솟았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던 2020년 6월 이후 4년5개월 만에 ‘4만전자’를 찍었다. 성장률 전망을 뒷받침하던 수출이 꺾인 후 각 기관들은 전망치를 잇따라 낮췄다.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미국 대선을 계기로 보다 선명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부처별로 연이어 나온 윤석열정부 2년반의 경제 성과 상찬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자료를 모으면 한국은 지난 2년반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된 물가 흐름 속에서 어느 때보다 양호한 고용으로, 10대 수출국 중 가장 높은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에서 사상 처음 일본을 넘어선 국가다. 여당 최고위원마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슈퍼스타에 빗댄 후 90점 이상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보탰다.

하지만 상반된 분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근 지표상 상대적으로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높아진 물가에 신음하는 이들이 여전하고, 고용도 뜯어보면 고령층 중심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출은 증가세가 꺾인 후 이달 들어 10일까지 전년 대비 17.8% 감소했다. 내수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56조원에 이어 올해는 30조원에 이르는 세수 결손이 예상돼 재정이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경제 슈퍼스타’ 발언을 한 여당 최고위원은 국민들이 정부 업적을 모른다며 홍보 부족을 언급했다. 하지만 생활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에 가장 잘 답할 수 있는 이들은 국민이다. 2012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밋 롬니는 4년 전보다 생활이 나아졌느냐는 레이건의 슬로건을 꺼내 오바마를 공격했으나 패했다. 하지만 오바마 역시 2014년 중간선거에서 다시 레이건을 인용하며 자신이 집권한 6년간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고 자신했다가 대패했다. 지금 한국 경제 상황에서 ‘2년반 전보다 나아졌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자화자찬보다 ‘아니’라고 답할 국민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게 순서 아닐까.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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