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누군가의 ‘현금인출기’가 되긴 싫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가능성
국내는 '밸류업'지수 포함된
상장사들이 주주 ATM 취급
기존 지분 가치 과도하게
희석하는 유상증자 신중해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 한국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직전 블룸버그뉴스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계속 집권했다면 한국으로부터 100억 달러(약 14조원)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한국은 ‘머니 머신’이다”라고 말했다.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란 미국에서 현금인출기(ATM)를 뜻하는 단어인데 트럼프는 한국으로부터 쉽게 방위비 분담금을 뽑아낼 수 있다는 의미로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달 미국과 타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에서 2026년에 전년 대비 8.3% 증액한 1조5192억원을 부담하고, 그 이후 2030년까지는 해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해 증액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는 차원에서 이런 말을 했겠지만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돈을 뽑아주는 현금인출기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미 타결된 제12차 협정 내용을 존중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우리 정부 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재협상 요구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국민 입장에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런데 트럼프의 머니 머신 발언을 보면서 국내 증시에서 홀대받는 국내 증시 투자자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최근 국내 증시를 부양하려는 ‘밸류업’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는데 이들 모두 상장회사가 전격적으로 추진한 ‘유상증자’와 관련이 있다. 그중 하나는 본업과 상관없는 신사업 진출을 이유로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수페타시스의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철회한 고려아연의 경우다. 이수그룹은 이수페타시스와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라는 두 개의 상장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은 이차전지(전고체) 관련 회사이고 이수페타시스는 통신 반도체 업체다. 그런데 이번에 이수그룹은 이차전지 소재 회사인 제이오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 아닌 이수페타시스로 하여금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구글이나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통신 반도체 회사 이수페타시스에 투자를 한 일반 주주들 입장에서는 이수그룹 차원의 결정으로 통신 반도체 사업과 무관한 이차전지 사업에 돈을 대야 하는 현금인출기 취급을 당한 셈이다.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규모는 무려 5500억원으로 10주를 가진 주주라면 3주가 배정되는데 발행가가 최근 주가에서 상당히 할인된 가격이다 보니 주주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사업 진출에 돈을 대기는 싫지만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분가치 희석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됐다. 사정이 이러니 AI 수혜주로 지난여름 5만9700원까지 올랐던 이 회사 주가는 유상증자 결정 직후 급락해 지난주 종가 기준 2만2400원까지 내려간 상태다.
고려아연은 또 어떤가. 고려아연은 주당 89만원에 실시한 공개매수가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공개매수 불과 1주일 후 주당 67만원에 발행 주식수의 약 18%에 해당하는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소각 목적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한다며 금융기관으로부터 2조원 넘는 자금을 차입했는데 공개매수 직후 67만원에 유상증자를 해 주주들 돈 2조원 이상을 끌어모으겠다는 것은 결국 우호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 게 당연하다. 금융감독원이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에 착수하고 시장 안팎의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2주 만에 유상증자를 철회했지만 주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유상증자를 아무 거리낌 없이 결정한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이사회에 대한 불신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유상증자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자금의 용도가 투명하고 주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며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과도하게 희석시키는 증자는 신중해야 한다. 위 두 회사 모두 코리아 밸류업지수에 포함된 상장회사라는 점에서 밸류업이 단순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의 당근책만으로는 어렵다는 게 밝혀졌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현금인출기가 되긴 싫은 법이다. 우리 상장사들이 일반 주주들을 현금인출기 정도로 취급한다면 ‘국장’(한국 증시) 자체가 투자자들이 앞다퉈 돈을 빼서 떠나는 ATM으로 전락할 것이다.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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