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징용 피해자, 원폭 희생자들의 처절한 삶 복원”
“제가 만든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한을 품고 있죠.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 침략당한 우리 동포들의 쓰라림을 찾아가 기록하는 일이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박수남 감독)
지난 1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희생자의 증언을 담은 작품이다. 재일조선인 2세 박수남(89) 감독이 딸 박마의(56) 감독과 공동 연출했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의 이중 고난을 기록한 첫 다큐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 강제 징용 조선인·위안부를 좇은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 등을 연출한 박수남 감독의 다섯번째 작품이다.
그의 작품이 영화제가 아닌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개봉 다음날 서울 시청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아흔살 돼서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작품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딸의 이름은 신라 멸망 후 고려에 귀의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마의태자에서 따왔다. 박마의 감독은 “일본 학교에서 식민 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아 내가 일본에서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어머니의 일을 통해 내 정체성을 확인한 것이 인생의 좌표축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천황이 신이라 믿었던 박수남 감독은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조선인 정체성에 눈떴다고 한다. 한복 차림의 어머니 손을 잡고 길을 가다 돌팔매와 함께 “조센징, 더러워. 돌아가!”라는 혐오 발언을 듣고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1958년 일본인 여학생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재일조선인 2세 청년 이진우 사건(고마쓰가와 사건)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자문하게 됐다.
그가 이진우의 갱생을 위해 주고받은 옥중서신을 엮은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펜을 놓고 카메라를 들게 된 건 피해자들의 떨리는 몸, 고통스러운 침묵을 담기 위해서다. 군함도의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며 다큐를 만들어왔다.
이번 작품에선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역 피해를 적시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군함도의 역사도 다뤘다.
1985년부터 한국·일본의 증언자 100여명을 만나 기록한 고통의 역사는 16㎜ 필름으로 10만 피트(30.48㎞), 50시간 분량에 달한다.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스페셜 부문에 ‘되살아나는 목소리’가 초청되자 일본 정부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주독 일본대사관이 영화제 측에 작품 정보를 문의하고 면담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일본 교도통신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박마의 감독은 “이는 일본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심각한 위기를 드러내는 징후”라고 지적했다. 박수남 감독은 일본의 역사 만행을 고발하는 다큐 제작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카메라는 영화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이고, 심장”이라며 “우리 모녀가 돈도 집도 없이 빚을 내서 살고 있지만, 우리 겨레의 한을 전하는 게 억울하게 죽어간 분들에 대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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