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이겠지"... 진서연님,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최은영 기자]
다음달이면 수영 강습 받은지 딱 2년이다. 출석률 90프로 이상의 성실 회원이지만 실력은 내세울 게 없다. 그랬어도 괜찮았다. 학생 시절 내내 체력장 최하위였던 내게 이만큼의 성실자체가 과분해서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tvN <무쇠소녀단>이라는 예능을 봤다. 여자 연예인 4명이 4개월 훈련으로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하는 거라고 했다. 거기에는 2년 전의 나만큼 수영을 못한, 물을 무서워하는 40대의 진서연 님이 있었다.
예능이니까 설정이겠지, 설정 아니면 실패겠구나 싶었다. 시청률 잡으려고 별짓을 다하네 하면서 그냥 껐다. 나는 여전히 수영장에서 발전 없는 성실한 고인물이었고 <무쇠소녀단>은 완전 잊었다.
▲ 수영에서 정체는 도태였다. |
ⓒ PIXABAY |
내 수영은 그저 재미였다. 내가 저지른 한심한 일을 물에 흘려보내는 것만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하찮은 감정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스트레스 받았을 때 분노로 달려드는 날이 있긴 했지만(참고 : 수영장에 나타난 50대 아저씨, 우울이 사라졌다 ) 자주 그러진 않았다. 즐겁자고 하는 운동을 유난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쇠소녀단> 본방을 처음으로 챙겨봤다. 철인 3종 경기 실전 영상이었다. 진서연 님은 수영에서 컷오프(제한시간) 2분을 남기고 간신히 통과했다. 나는 눈물이 찔끔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음 코스에서 컷오프 당하겠네' 싶었다. 저정도 했으면 더이상 남은 체력이 없어야 했다. 나랑 똑같은 40대인데 저 상태로 사이클 40km를 탄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 그런데 사이클 업힐(오르막길)에서 남자 참가자들을 추월한다. 말도 안 돼!
내가 유치한 질투를 했던 거다. 나와는 전혀 다른 땀과 의지를 '방송이니까, 전담코치가 붙었으니까' 하면서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마음, 그거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성실 회원이라 해도 나만 아는 불편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수영할 때 가끔 그 가시가 미묘하게 아렸다. '재미있으니까 됐지'라고 다독이면서 내 속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열등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살은 공평했지만, 내가 그 물살에 부딪힌 방식은 어딘가 어설펐다. 미묘했던 가시가, 어설프게 부딪힌 물결이 엉뚱한 데에서 질투로 폭발한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분명 있었다. 아니, 나도 거기까지의 즐거움을 위해 분명 노력은 했다. 같이 시작한 다른 회원들이 레인 왕복을 할 때 나는 못했기에 자유수영을 따로 끊어서 연습했다. 레인 왕복 연속 10번쯤 할 수 있을 때 내가 할 노력은 다했다고 믿었다.
수영에서 정체는 도태였다. 아등바등 해야 연속 10바퀴가 나오는지라 굳이 또 하고 싶지 않았다. 8바퀴 돌아 놓고서 '10바퀴 할 수는 있지만 굳이 힘 뺄 필요 없잖아?' 했다. 못했으면서 안 했다고 포장했다.
▲ tvN <무쇠소녀단> 관련 이미지. |
ⓒ tvN |
진서연님은 철인3종 경기 전체 컷오프를 통과했다. 마지막 10km 달리기에서는 페이스 4까지 올리는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쇠소녀단> 멤버들은 결승선에서 서로를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나도 그때만큼은 주책없이 펑펑 울었다.
오랜만에 자유수영을 갔다. 무조건 10바퀴를 채운다는 마음이었다. 채우긴 했는데 마지막 4바퀴는 체감 페이스가 처음의 10%도 안 되는 거 같았다. '일정한 페이스 10바퀴를 목표로 다시 연습해야겠네'하면서 배영으로 누웠다.
물 밖 공기는 달고 시원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물결 속에 스며들어 점점 잦아들었다. 물의 차가움이 피부를 타고 흐르며 따뜻한 열기를 밀어냈다. 물결은 내 몸을 부드럽게 흔들었고, 그 속에서 묵은 후회와 두려움이 흩어지는 듯했다. 눈을 뜨자 물 위로 퍼진 빛이 반짝이며 나를 감쌌다. 얕은 숨이 깊어지고, 쿵쾅대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이번주 강습부터 나는 수영 1주차다.
진서연님, 성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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