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이 2024년 10월 30일 개봉했다. 1970-80년대 여성노동과 인천 빈민지역의 탁아운동을 함께 했던 여성들을 조명했다. 그녀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그 시대를 살았는지, 그 이후의 삶의 이야기를 따듯하게 담고 있다. 가난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따듯하게 함께 품어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 열 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말>
[심아정 기자]
김미례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보기 전에 혹은 본 후에 읽을 거리, 생각 거리가 될 수 있는 연재 기사를 기획했다. 열 편의 기사에는 영화의 잔향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영화에서는 미처 다 하지 못했던 감독과 출연진의 말이 담겨있기도 하다.
원고를 받고 정리하는 편집 과정에서, 특히 출연진이 꾹꾹 눌러 쓴 손 글씨로 보내준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내 마음으로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강렬하지만 따뜻했고 치열하지만 다감했던 출연진의 글에 흔들리고 휘청이며 위로 받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열 개의 우물>은 1978년 동일방직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 인천 십정동, 만석동, 화수동에서 빈민운동 혹은 탁아운동을 하던 여성활동가들 , 피난민과 철거민으로 인천과 부평 일대로 흘러 들어온 가난한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그 시대를 살아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지, 한 사람에서 또 한 사람으로 서로를 매개하고 보듬는 이들을 찾아 나선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국의 빈민지역과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100여 곳의 탁아소가 만들어졌던 1970~80년대는 '돌봄'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 속 출연진이 살아낸 그 시공간에는 분명 '돌봄 투쟁'이라 불려 마땅한 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탁아운동' 혹은 '공부방 운동'이 활기를 띠었던 시대였다. 이 영화를 통해 국가의 복지 체제로 편입되기 이전에 시도된 여러 관계들과 육아·빈곤·지역·여성 노동의 복합적인 문제군(群)을 사회화하는 변혁운동의 맹아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동일방직 해고와 복직투쟁을 겪은 여성노동자가 살아온 '이후의 삶'에 대한 단편도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라는 공간을 채워나갔던 여러 존재들의 만남과 어긋남, 그리고 드러나지 않았던 분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라는 커다란 이름에 가려져 그 운동을 지탱하면서도 비가시화되었거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길어 올려진 것에 대한 기쁨이 있다. 동시에 '겪지 않은' 세대로서 앞선 세대 여성들의 분투를 지금-여기를 살아내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하나의 과제로 다가온다.
▲ 전 동일방직 해고자 안순애와 김미례감독 <열 개의 우물> 촬영 중에 |
ⓒ 박상환 |
"나는 투사가 아니다, 지금은 농사꾼이다. 내가 이념이나 사상이나 목적의식이 투철해서 노동운동한 게 아니다. 그땐 잘 모르면서도 그냥 했다. 살아야 되니까, 살려고 했다.
뒤를 돌아보면 늘 낭떠러지였다." (안순애)
안순애는 낭떠러지 같은 노동운동에서 물러나 농촌으로 도망쳐 30년을 살았다. 동네 할머니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아 마을 이장도 두 번이나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농민운동을 했다. 안순애의 이야기를 듣다가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벨훅스)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결혼하기 싫은 남자의 집에서 달아나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접근권을 박탈당한다고 느끼자 그에 대해 거부했고, 항의했고,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할머니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창비, 2016, 51쪽)
개봉 전에 여러 곳에서 후원 상영회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김현숙이 사는 강화와 안순애가 사는 음성 두 곳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날이 좋고 바람이 선선했던 지난해 어느 가을 밤, 강화 큰나무 카페에서 <열 개의 우물>은 첫 관객들을 만났다. 출연진 중 한 명인 '국자와 주걱' 책방지기 김현숙이 애써준 덕분에 마련된 자리였다. 연휴 기간인데도 상영 공간은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팝콘 대신 누군가 가져온 풋대추 한 바구니를 함께 나눠 먹었다.
이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발달장애인 청년이 여럿 와 주었는데, 다큐가 상영되는 동안 화면 앞으로 지나가거나 갑자기 일어나 서성이며 화면을 가려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웃이 없었다. 상영 후에 짧은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엔딩으로 나왔던 단편선의 노래를 '한 번 더' 틀어달라는 청년도 있었고, 그에게 영화를 본 소감을 나눠 달라고 했더니, 시간차를 두고 "조..아...요..오오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강화에서 태어나 지금껏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는 관객은 다큐를 보고 "땅 위에선 보이지 않는 미세한 뿌리들이 나무를 지탱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바닥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영화에 왜 여자들만 나오냐, 남자들은 한 명도 안 나오는데, 일부러 뺀 거냐"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국자와 주걱'에서 북 스테이를 하던 기후위기 활동가들도 왔는데, 동일방직 사건이나 당시의 탁아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페미니즘 운동 속에서 지난 운동들을 고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나눠주었다.
내가 구사하는 언어들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삶들이, 몇 십 년 전 누군가 고군분투하며 살아낸 세계가, 자그마한 후원 상영회에 발걸음을 옮겨준 이들의 말로 그 윤곽을 울룩불룩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누구와 어디서 함께 영화를 보는지에 따라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대사가 달라지고, 익숙했던 장면이 생경해 진다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안순애가 사는 음성에서 가까운 생극의 작은 소극장 '하다'에서 마을 주민 사십 여 분들과 함께 했던 후원 상영회도 기억에 남아있다. 상영회가 끝나고 이어진 GV에서 출연진 중 한 사람인 안순애는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나 여성농민운동 최전선에서 함께 싸워낸 이들이 아닌, 지금 음성 소이면에서 자신과 함께 수박 농사를 짓는 마을 할머니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 영화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꿈을 함께 꾸었던' 시공간을 담아 내고 있기에 안순애의 호명은 적어도 내겐 너무나 소중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 충북에서 여성농민 운동을 하는 이해자, 유주영, 안순애 <열 개의 우물>의 한 장면 |
ⓒ 감 픽쳐스 |
동네 사람들 대부분은 안순애가 살아온 내력을 영화를 보고 처음 알게 될 터였다. 그에 대한 안순애의 부담과 긴장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일방직 상의 탈의 시위 때 간부 언니들이 다 잡혀가고, 벗겨진 운동화, 윗도리, 브래지어를 주워 담으며 억울해서 울었다던 열여덟의 안순애. 그는 가부장제에 찌든 작은 농촌마을에서 처음엔 자기를 '이상한 여자'로 취급했던 마을 여성들의 신뢰를 얻고 그녀들을 든든한 동료 삼아 이장을 두 번이나 했다.
복잡한 도시에 사는 나에겐 '동네'랄 게 없다. 십 년을 살아도 이 동네에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누가 무슨 연유로 이곳을 떠나갔는지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출연진에게 십정동, 만석동, 화수동은 운동의 '현장'이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네'였다. 행정이 가닿지 않는, 아니 가 닿을 의지조차 없는 곳에서 우물이 된 여자들이 살아낸 가난한 '동네'를 쉽사리 낭만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각자 흩어져 살게 된 지금의 동네에서도 싸우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 없는 삶이 이어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이 늘 비장했던 것만은 아니다. 살아내려면 싸워야 하고, 싸워야만 살아지는 삶 속에서도 안순애의 '이후의 삶'에는 예쁘게 핀 별꽃과 마당 너머 펼쳐진 초록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 다큐 <열 개의>우물 메인 포스터 Ten Wells |
ⓒ 감 픽쳐스 |
그런데 '운동에서 물러선다'는 것을 각자 '다른 현장의 시작'으로 소박하게 이어간 이들을 보면서 큰 위로와 힘을 받았다. 안순애, 김현숙, 유효순, 신소영, 최선희, 홍미영, 황현숙, 정영암, 박순분, 유주영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퇴로를 만들어나간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갈 길만을 모색하는 이 시대에, 물러서는 방법을 상실한 이 시대에, 이들의 퇴로는 대로변에서 횃불을 들고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고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작지만 구체적인' 저마다의 현장, '동네들'을 비춘다.
물러선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과 다시-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예쁘게 피어난 별꽃에 감탄하며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고 만들어낸 오솔길. <열 개의 우물>은 김미례 감독이 출연진을 조우하고 묵묵히 만들어낸 또 하나의 오솔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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