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 사라진 노량진, 50-60대가 채우고 있어요"

이영광 2024. 11. 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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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334] MBC < PD수첩 > 김보람 PD

[이영광 기자]

올해 2차 베이비 부머 세대가 만 60세에 들어섰다. '2차 베이비 부머 세대'는 1964년부터 1974년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총 950만 명이다. 즉,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들이 만 60세에 접어들었다는 건 그만큼 노년층이 늘어난다는 의미도 된다. 과연 이들의 노후는 어느 정도 준비됐을까.

지난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 >에서는 '은퇴 없는 나라-5060 베이비부머 리포트' 편이 전파를 탔다. 51세로 희망퇴직 한 후 미래를 준비하는 이익숙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퇴직 후 또 다른 일자리 찾는 5060세대의 목소리 등이 담겼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3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해당 회차를 연출한 김보람 PD를 만났다.
 MBC 예고편
ⓒ MBC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보통 < PD수첩 >은 고발성 아이템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노후 문제는 (보통)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의 서사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는데, < PD수첩 >이라고 하니까 일단 겁부터 내셔서 섭외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취지고, 모두의 이야기를 공감가게 담고 싶다고 설득해서 사례자들 만났어요. 결과적으로 좋게 봐주시고 공감할 수 있었던 방송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 기존 < PD수첩 >에서 다뤘던 주제들과 결이 다른데, 그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사실 제일 중요한 거죠. 현상에 대한 통계는 많아요. 근데 그 안에 있는 건 결국 사람이잖아요. 정책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통계 속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휴먼 다큐 르포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5060 베이비 부머 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취재하게 되신 거예요?
"올해 7월에 한국은행에서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가 하나 나왔어요. 총 95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인구고, 그 초입의 1964년생이 올해 딱 법정 은퇴 연령 60세에 진입했죠. 이들의 은퇴가 우리 경제의 경제성장률을 연간 0.38%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그걸 보고 취재를 시작하게 됐어요."

- 취재는 어디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일단 은퇴 전후의 사례자를 찾으려고 노력했고요.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이나 경기도 일자리재단 같은 기관에 연락해서 취재 목적에 부합하는 분을 소개받으려 했었고요. 또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님 책을 봤어요.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라는 책을 쓰셨는데 한국은행 보고서와 맥이 닿아 있는 문제 같아요. 고령 일자리의 생산성에 대해 고민하신 책이었는데 도움을 받았고요. 노후 문제를 다룬 다큐나 생활정보 프로그램들도 참고로 봤어요."

- 이 문제를 다룬 방송이 그동안 많았잖아요. 차별화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올해가 2차 베이비부머인 1964년생이 처음으로 60세 되는 해이기 때문에, 초점을 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 맞췄거든요. 흔히 고령화 이슈나 은퇴나 노후 얘기를 하면 '노인 빈곤' 얘기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저희 방송은 IMF와 금융위기를 맞아 평생직장의 신화가 무너지는 걸 목격하면서 경제생활하던 이들이 은퇴를 앞두고 '정글'에 나온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 51세인 이익숙씨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작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뷰하는 순간 마음이 약간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어요. 희망퇴직을 했는데 아이에게 말하지 못하고 도서관으로 출퇴근했던 마음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 51세면 정년퇴직하실 나이는 아니시잖아요. 어떤 연유로 회사를 그만두신 거예요?
"저희 방송의 대부분 사례자가 그런데요. 60세에 정년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은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 많지 않죠. 이 사례자도 사실상 비자발적으로 희망퇴직을 하신 건데, '희망퇴직'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모순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그 누구도 '희망'하지는 않는 희망퇴직이거든요."

- 방송 보니까 이익숙씨가 친구분들 만나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시잖아요.
"51세 동갑내기 친구끼리 옛날얘기 나누시는데, 저도 들으면서 아 그랬지 싶었던 게 있더라고요. PCS폰 나왔다고 얘기하셨는데. 개그맨 김국진씨가 '여보세요?'하는 017 광고들. 삐삐 얘기도 하시고요. 영화 <접속>을 보면서 우리가 PC통신도 했던 세대지 싶고. 그러면서 확 드는 생각이, 저 세대는 그때부터 지금의 AI까지 다 봤던 세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진짜 빠르게 발전했다는 거예요. 그걸 다 경험한 세대가 지금의 고령화 국면에 접어든 거잖아요."

- (방송을 보면) 1992년 얘기하다 1987년으로 갔다가, 2008년 금융위기까지 보여줬잖아요.
"구성상 고민한 결과인데요. 서태지, X세대 오렌지족 얘기 나오면서 '맞아, 저 세대는 정말 저렇게 자유롭게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주체적인 자기 언어를 가진 첫 세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50대가 되어 자유롭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도 많아졌죠. 내 개성이 중요한 청년기에서, 개성보다 먹고 삶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 현실이 확 대비되는 느낌도 주고 싶었어요."

- 58세인 박정혁(가명)씨의 이야기도 나와요.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죠. 우리나라에서는 주직장 퇴직 연령이 평균 50세 전후인데, 지금 기준으로는 63세부터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으니 연금 생활을 하기까지 시간상 공백이 발생하잖아요. '한국 사회에서의 50대, 60대 초는 자녀가 완전히 독립하진 못할 시기예요. 그러니까 일을 어떻게든 이어 나가지 않으면, 고정적인 소득이 없으면 불안한 거죠."
 김보람 PD
ⓒ 이영광
- 취업 박람회도 가셨잖아요.
"제가 사전취재 기간부터 일자리 박람회만 세 번 갔거든요. 생각보다 많이 오시는 거예요. 이렇게 일을 원하는 중장년 5070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 이철희 교수가 퇴직자들을 빗댄 표현이 와 닿더라고요. 유럽 1부리그에서 뛰던 선수가 2부리그로 내려가고 그다음 3부 리그로 가는데, 한국은 1부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조기 축구회로 바로 간다고요.
"굉장히 확 와닿는 비유였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외국은 주직장 퇴직 연령이 그렇게 짧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50.5세라고 통계에서 나오지만, 사실 그것까지도 못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재취업 시장이 너무 큰 거예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공적 연금 안전망이 취약해요. 소득대체율이 충분하지 않으니, 불가피하게 일은 해야 되는데 중장년 일자리나 재취업 시장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더 필요한 게 현실이고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경제 자체가 저성장 기조로 가고 있고 이미 청년들 일자리도 부족하고 모든 전체적인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이런 가운데 6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고, 이들을 위한 대책은 필요하죠.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봐요."

- 연금 문제도 큰 것 같더라고요.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65만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국민연금이 1988년도에야 시작됐기 때문에 연금제도의 미성숙에 기인한 부분도 있어요. 초기에는 '연금 꼭 가입해라, 꼭 국가가 돌려준다'고 그렇게 광고했지만, 사실 초기부터 가입률이 높지는 않았거든요. 연금 제도가 더 숙성되면 조금 더 나아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비해 연금 구조가 부실한 건 사실이거든요. 또 아이들도 태어나지 않고, 극단적인 저출생으로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 예상되는 대한민국이니까 연금의 미래도 사실 어둡죠."

- 퇴직하고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많은가 봐요.
"엄청 많으세요. 노량진에 공시족이 사라진다는 뉴스들 꽤 나왔는데, 그 자리를 거의 50대 60대가 채운대요. 실제로 노량진 쪽에 기술학원들 가보면 평일 저녁 반이랑 주말 반에 50~60대분들, 40대도 되게 많더라고요. 기술은 늙지 않는 것 같고 가장 안전하게 내가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많이들 기술을 배우는 것 같아요."

- 숙련공을 재고용해서 운영하는 회사도 있나봐요.
"저희가 취재한 회사 외에도 꽤 여러 곳이 있었어요. 주로 제조업 분야인데요. 개인은 오래 일하고 싶어 하고, 회사도 그만큼 숙련된 기술자를 아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거죠."

- 우리나라가 내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요. 이에 대한 대안이 있을까요?
"정답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미래가 오고 있잖아요. 이런 이슈들을 취재하다 보면 답 없는 문제를 무책임하게 던지는 게 아닐까란 생각에 결론 을내야 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답이 없다는 것도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화두를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어요?
"취지에 맞는 사례자들을 정말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결과적으로 공감하고 힘든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방송을 만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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