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 왜 푸대접 받았을까

김상목 2024. 11. 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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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전장의 크리스마스>

[김상목 기자]

이 영화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알음알음 볼 사람은 다 본 데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해당 작품을 걸작이라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음악은 어디서 들어봤다는 이들이 허다할 정도다. 영화 제작 당시인 1980년대 초반에는 각자 분야별로 유명인사이긴 했지만, 영화에는 첫 출연이던 주요 배역을 맡은 이들이 이제는 '전설' 급의 존재가 된 것만 해도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작품이 왜 여태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것일까?

언급된 작품은 일본의 거장 오시마 나기사가 1983년에 공개한 <전장의 크리스마스>다.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을 다룬 전쟁 역사물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 10여 년은 어차피 전부 정식 수입이 불가능했지만, 1990년대 말 문호 개방 이후로도 그 명성에 비해 20여 년 넘게 묻혀 있었다. 거장의 호평받은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푸대접을 받은 걸까?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가볍지 않은 고민에 잠기게 될 테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길래.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
▲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1942년 인도네시아 자바섬. 이곳에 일본군이 관리하는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군 포로들이 가득한 이곳은 요노이 대위가 소장으로 통제하는 중이다. 전쟁 초반 파죽지세로 남방 전선에 진격해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영유한 식민지를 정복한 일본군의 기세는 식은 지 오래고 전선은 미군과 팽팽한 교착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점점 곤궁해지는 일본군 상황 탓에 포로수용소 처우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제네바 협정을 도외시한 일본군의 처사 때문에 중환자가 가득하고 노역에 시달리며 고달픈 나날이 이어진다.

영국군 존 로렌스 중령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포로 측과 일본군 사이에서 통역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내에서 가능한 중재를 통해 불합리한 일을 막고 피해를 줄이려 노력하지만, 그의 수고에도 중간에 낀 신세는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실질적으로 수용소 실무를 관장하는 하라 (부사관에 해당하는) 군조와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는다. 둘은 우여곡절 사고를 치르며 영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한다.

그러던 중에 게릴라전을 벌이다 항복한 잭 셀리어스 소령이 수용소에 도착한다. 요노이 대위가 처형될 위기에 처한 그를 구명해 데려온 것이다. 잭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를 베풀며 요노이는 비협조적인 기존의 포로 대표 대신 잭을 기용하려 하지만, 반항적이고 탈출을 수시로 꾀하는 잭 탓에 번번이 의도가 어그러지고 만다. 요노이는 점점 혼란한 행보를 벌이고, 주변에선 그런 지휘관에 대한 소문과 우려가 파다해진다.

한편 점점 가혹해지는 일본군의 포로 대우 탓에 사망자가 속출하고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해야 하는 수용소 당국의 희생양 찾기도 상황을 한층 악화시킨다. 로렌스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희생은 막으려 노력하지만, 자신의 목숨 부지하기도 쉽지 않다. 마침내 수용소와 포로들의 대립은 폭발 직전에 이른다. 무고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누군가는 결단해야 할 상황이 다가온다. 과연 이들은 전쟁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쳐가는 전쟁터에서 돋보기로 발견하는 '인간의 조건'
▲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전쟁영화로 소개되지만, 해당 장르에 기대하는 요소는 작품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수용소라면 응당 떠올릴 본격 탈출 시도나 전투 장면 같은 건 감독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불순물에 불과하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불가사의한 경이, 그리고 전쟁과 군사주의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초라한 것인지를 영화예술로 입증하고자 분투할 따름이다.

남방 밀림에서 소모전에 휘말린 답답한 상황, 속 시원한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체념은 일어나지 않고 각자 불안과 초조함만 가득하다. 주요 인물 머릿속도 제각각이다. 전쟁터에선 가장 아름다운 미덕과 추악한 욕망이 동시에 일어난다는데 이 영화도 의외는 아니다. 어떻게든 통제권을 유지하고 외교협약에서 금지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부족한 정보와 자원을 끌어내려는 수용소의 강압과 맞서는 포로 사회 내 개별 사정이 미묘하게 엉킨다.

요노이 대위는 죽을 곳만 찾아다니는 존재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동료들이 아닌 로렌스 중령에게 토로한다. 마치 대나무숲을 찾듯 말이다. 일본의 군사 파시즘 체제를 결정적으로 확정한 1936년 2.26 사건의 심정적 동조자, '황도파' 일원이었지만, 하필 만주로 전출되는 바람에 자신의 동지들이 실패한 쿠데타로 처형된 데 반해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이 그를 지배한다. 그래서 더 군인정신과 무사도에 매달린다. 아름답게 꽃같이 죽지 못했다는 한이 그를 유령처럼 공허하게 몰아간다. 잭을 만나기 전까지는 딱 그랬다.

잭 소령은 용맹한 군인이자 성공한 변호사, 게다가 훤칠한 미남이지만 허깨비처럼 살아간다. 중반에 독방 벽을 통해 옆 감방의 로렌스에게 들려준 바대로, 누구건 호감을 보이는 본인과 달리 장애를 안고 태어난 동생과 비교는 어릴 적부터 말하지 못할 고민을 안겼다. 유복한 환경 탓에 함께 사립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릴 적과 달리 잭은 차별을 당하는 동생을 지키려 나서길 주저했고, 동생은 형의 비겁함을 알고도 항변하지 않는다. 그 기억은 늘 죄의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과 사 갈림길인 전쟁에 지원했고, 언젠가 돌아가 동생에게 사과할 기회를 고대한다.

로렌스는 하라 군조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억압하는 자와 당하는 자 구도라 애로가 피어난다. 양쪽에서 갈굼을 당하며 자기 잘못도 아닌데 나서다 폭언과 구타에 당하기 일쑤다. 이제 좀 그만 때렸으면 좋겠다며 점점 피폐한 몰골로 변해가지만, 유머와 균형감각은 놓지 않으려 애쓴다. 마치 자신과 여기 원치 않게 모인 모든 이들이 '인간'임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하라 역시 포로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실상 수용소의 '행정보급관' 노릇을 도맡기 때문이다. 그의 평소 행태는 호통과 윽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일본군 그 자체이다가도 곧잘 자기 재량 내에서,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호의를 베푸는 뜻밖의 면모를 보인다. 이 영화 제목과 연결해 본다면 하라의 행보는 요노이와 잭이 벌이는 극적 긴장을 아래에서 떠받치는 토대와 같다. 로렌스는 이 극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곧 잊힐 사건을 기록하고 전하는 관찰자 역할로 하라와 또 다른 콤비를 이룬다.

거장은 탐미적 풍경으로 무엇을 전하려 했는가
▲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이 영화에 대한 어떤 불편함은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지점일 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근래 한국 사회를 격심한 분란으로 수놓는 성 소수자 소재가 추가로 결합하니 한층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가의 진심에 접근한다면, 작품이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문제다. 반일감정과 민족주의 너머에 인본주의와 역사적 통찰을 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가능한 경로다.

중요한 복선이 되는 초반 사건이 있다. 일본군은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고자 식민지인을 간수로 활용한다. 전후 포로 학대 혐의로 처형된 하급전범 중 상당수가 그렇게 끌려간 조선인과 대만인들이다. 일제 동맹이던 나치독일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학대와 폭력을 전담한 건 수용자 동료 중 기용하던 것과 대동소이하다. 영화에도 조선인이 간수로 포로들을 직접 상대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로렌스가 하라에게 불려간 사건 역시 그런 배경 아래다. 네덜란드 포로를 치료하던 조선인 간수가 사건을 일으키고, 불미스러운 혐의로 처벌되면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할 수 없으니 로렌스의 협조를 (강요로) 구하는 하라와 거세게 언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나고 나면 태풍의 전조에 불과했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뜬금없이 이게 무슨 설정인가 싶을 이들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애초 전쟁 자체가 미친 짓이라는 오시마 나기사의 반전주의는 확고하다. 전쟁 광풍 앞에서 개별 군상이 벌이는 극단적 상황이 과연 단순 일탈에 불과할까? 정신을 놓아버리건, 반대로 감히 도전하기 힘든 일을 해내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을까? 가상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독해하는 게 <전장의 크리스마스> 올바른 관전 경로일 테다.

영화는 말과 글로 설명하기 힘든 영상 문법으로 때로는 아찔하게, 혹은 더 없이 매혹적으로 어떤 초월적 찰나를 거듭 관객 앞에 그려낸다. 뭐라 설명하긴 쉽지 않은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거나 아득한 감회가 밀려오는 식이다. 대체 왜 순간 이런 감정이 쏟아졌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체험을 숱하게 겪으리라 믿는다.

40년이 지나 도착한 영화, 녹슬지 않은 마법
▲ "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엣나인필름
오시마 나기사는 온전한 과거 청산과 동떨어진 전후 일본에서 유행하던 역사 미화, 전쟁 드라마와 단절하길 꿈꿨다. 그래서 해당 작품에 출연한 동시대 유명배우들을 몽땅 배제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캐스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감독에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배우의 기존 이미지가 아니라 온전하게 각본 속 캐릭터에 빙의하듯 형상화된 캐릭터가 필요한 작품이었다. 그 결과는 대부분의 주연배우를 연기 신인, 하지만 각자 전문분야의 장인들로 채우게 된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마치 필연이 매개하듯 놀라운 마법으로 증명되고 만다.

잭 역은 이미 최정상의 음악계 스타였지만 연기는 초짜인 데이비드 보위(!), 요노이 역은 촉망받는 음악인이지만 본작의 사운드트랙을 맡길 겸 류이치 사카모토가 기용된다. 영화의 가장 궁극적 순간이자,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응축 자체라 할 (영문 제목 그대로의) 장면을 맡은 '게닌(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에게도 데뷔작이 되었다.

이들이 구현한 캐릭터는 단순 연기력을 넘어 화면에 그려진 이미지 자체로 작가의 진심을 전달하는 경지에 닿는다. 처절한 전쟁 중에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인사와 선물을 나눌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아주 조금 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작품정보>

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일본|드라마/전쟁/퀴어
2024.11.20. 개봉|123분|15세 관람가
감독 오시마 나기사
출연 데이비드 보위, 류이치 사카모토, 기타노 다케시, 톰 콘티
음악 류이치 사카모토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공동 제공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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