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현습지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팔현습지도 가을빛으로 성큼 물들어갑니다. 이 가을 팔현습지를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대구 동구 방촌동 강촌햇살교 좌우의 금호강이 이른바 팔현습지 핵심 구간입니다. 청석이 깔려 있고, 물길이 낮아 강촌햇살교에서 보면 강바닥이 훤히 보입니다.
완벽히 부활한 금호강의 가을 팔현습지
그 낮은 물길 속에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다닙니다. 팔현습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야생의 존재들입니다. 누치떼가 은빛을 뽐내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해줍니다. 마치 금호강 팔현습지 환영 인사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 팔현습지 누치떼의 환영 인사 팔현습지로 들어가는 대구 동구 강촌햇살교에서 만나게 되는 누치떼의 화려한 군무 ⓒ 정수근
누치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라미도 떼로 몰려다니고, 어른 팔뚝만한 큰 잉어들도 서너 마리씩 유영합니다. 다큐 <야생의 팔현습지> 예고편이라고나 할까요?
강촌햇살교를 건너 들어가면서부터 이곳이 가을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근 제봉의 줄기인 야트막한 야산들의 다양한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면서 잎을 떨구고 있습니다. 예쁘게 꾸민 산책길을 버리고 하천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원시 자연의 금호강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이 손을 전혀 대지 않은, 금호강 물길과 신의 숨결이 만들어낸 금호강 원형의 모습입니다.
금호강 속으로 들어가면 맑은 강물 속에서 또 다른 야생의 존재들을 만납니다. 어른 손바닥 만한 민물조개 '대칭이'와 '말조개'. '펄조개' 그리고 재첩과 다슬기 같은 이른바 저서생물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금호강의 수질이 거의 2급수 이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금호강은 사실 산업화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섬유산업이 발달한 이곳 대구의 본격적인 산업화 시기인 70~80년대 금호강은 시궁창을 방불케했습니다. 그 시절 금호강의 모습을 기억하는 많은 대구사람들에게 민물조개와 다슬기 같은 친구들이 사는 금호강의 모습은 경천동지한 변화일 것입니다. 금호강은 거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거의 완벽히 부활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그 결정적 존재가 바로 이들 다양한 물고기와 저서생물들입니다.
▲ 민물조개 '대칭이'가 강물 속 조약돌 사이를 기고 있다.
ⓒ 정수근
▲ 금호강 팔현습지에는 다슬기까지 돌아왔다.
ⓒ 정수근
▲ 미꾸리지 사촌인 미꾸리의 한 종류로 몸에 얼룩 무늬와 얼굴이 새코를 닯았다 해서 얼룩새코미꾸리란 이름을 얻은 물고기로 멸종위기 1급 야생생물이다.
ⓒ 정수근
미꾸라지 사촌이랄 수 있는 '얼룩새코미꾸리'라는 멸종위기 1급의 희귀 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물고기와 민물조개, 다슬기 등의 존재는 금호강이 부활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더해 이곳 팔현습지가 예사로운 공간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는 또다른 야생의 친구가 있습니다. 왕버들과 수양버들로 구성된 하천숲을 빠져나오면 인근 야산의 한 면에 접한 하식애(河蝕崖)의 물길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준 절벽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 사는 '팔현습지의 수호신' 수리부엉이 부부를 볼 수 있습니다. 필자가 지어준 이름인 '팔이'(수놈)와 '현이'(암놈)라는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는 팔현습지 하식애를 집 삼아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살아온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터줏대감입니다.
야행성인 이들은 낮에는 하식애 절벽 한쪽에서 잠을 청하고, 땅거미가 내리는 일몰의 시간이 오면 그때부터 기지개를 켜고 본격적인 사냥을 나갑니다. 땅거미가 내리면 "우우 우우" 울면서 서로에서 신호를 보낸 뒤 수놈인 팔이부터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고 그 뒤를 따라 암놈인 현이도 비상을 합니다.
▲ 팔현습지의 깃대종 수리부엉이 부부 중 암놈 '현이'가 나무 아래 쉬고 있다.
ⓒ 정수근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 앞으로 길을 내겠다는 환경부
이들이 낮잠을 청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는 절벽을 따라 계속 들어갑니다. 가을 산빛을 좌측으로 두면서 걸어들어가면 다시 귀한 생태 공간인 왕버들숲을 만나게 됩니다. 스물두 그루의 왕버들로 이루어진 왕버들군락지는 팔현습지의 명물이자 귀한 생태공간이자 비밀의 정원입니다. 또한 담비 같은 깊은 산중의 야생동물이 다녀가기도 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금호강 원시 자연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생태 공간입니다. 산의 생태계와 강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기에 수많은 야생의 존재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길게 이어진 이 왕버들숲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다양한 깃발이 보입니다. 붉은색 깃발은 이곳이 토건 공사가 예정된 곳이란 표식이고, 그 옆에 "같이 살자", "보도교 반대", "공사 그만"이라는 깃발은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보호하고 보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만들어둔 것입니다.
▲ 팔현습지에 공사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붉은 깃발과 이를 반대한다는 깃발
ⓒ 정수근
▲ 곳곳에 공사를 반대한다는 깃발이 걸렸다.
ⓒ 정수근
▲ 팔현습지에 삽질을 중단하라!
ⓒ 정수근
이들이 이런 예술행동을 벌이는 것은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이곳에 1킬로미터 정도의 길을 건설하려는 토목공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팔현습지 수리부엉이 부부가 살고 있는 그 좌우 산지를 따라서 길게 길을 낸다는 것입니다. 8미터 높이의 교량형 보도교 사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산과 강의 생태계를 완벽히 가르는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 팔현습지를 사랑하는 이들 젊은 예술가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와 대구환경운동연합과 같은 환경단체들과 함께 팔현습지를 지키기 위해서 예술적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담쟁이가 왕버들을 타고 오르는 모습 사이로 예술행동팀이 설치해둔, 이 사업의 문제점을 잘 담은 팸플릿을 활용한 설치미술도 만나게 됩니다.
▲ 환경부발 삽질인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을 반대합니다.
ⓒ 정수근
▲ 예술행동의 설치미술. 환경부는 삽질을 중단하라!
ⓒ 정수근
그런데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이자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구간인 이곳으로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주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멸종위기종 및 서식처를 보전해야 하는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입니다. 팔현습지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부활한 금호강과 팔현습지에 행하는 환경부발 '삽질'을 반대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팔현습지임을 입간판. 이곳은 금호강 팔현습지입니다.
ⓒ 정수근
▲ 이곳은 수리부엉이 서식처 팔현습지 하식애입니다.
ⓒ 정수근
팔현습지여, 영원하길
팔현습지가 점점 가을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이내 곧 겨울이 올 찾아올 것입니다. 낙엽을 다 떨구는 겨울이 오면 팔현습지는 다시 겨울철새들의 왕국으로 변신합니다. 벌써 이곳을 찾은 겨울철새들도 적지 않습니다.
환경부의 결단으로 수많은 야생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팔현습지가 온전한 모습으로 영원히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