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웅] 맨발 노숙자에게 신발 신겨준 남자의 뒷이야기 (영상)
지난 10월 22일 오후, 대전 중구의 한 남성의류 매장. 아침부터 쏟아진 비로 매장은 썰렁하고, 오지 않는 손님에 입구만 쳐다보던 사장님. 그때 누가 들어옵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그냥 손님인 줄 알았고, 근데 몸도 다 젖어있고 물이 뚝뚝 덜어졌어요. ‘물 떨어지네’ 이러면서 바닥을 봤는데...”
맨발이었습니다. 빗물에 퉁퉁 불은 데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그런 맨발. 시커먼 발로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겨울옷값을 물어보던 남자는 가격을 듣더니 그냥 나가버립니다.
다시 조용해진 매장. 사장님은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밖에는 비가 여전히 내렸고, 남자는 그 비내리는 거리를 상처난 맨발로 헤맬 게 뻔했으니까요. 망설이던 사장님은 벌떡 일어나 남자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쫓아가서 선생님 사이즈 어떻게 되시냐고 그랬더니 270cm라고 그래서 저희 '가게에 맞는 신발 있으니까 하나 드릴게요'라고...”
남자을 다시 매장으로 데려온 사장님은 새 신발 하나를 꺼내 건넨 뒤 이렇게 의자를 끌어와 앉히고 양말까지 챙겨줍니다.
이후 신발을 사러온 손님에게 늘 그렇듯, 쪼그려 앉아서 신발 끈을 풀고 신겨줍니다. 잘 맞는지 사이즈도 확인하고 나머지 신발도 신겨주죠.
그렇게 새 신발을 신은 남자는, 온몸은 젖었지만, 발만은 뽀송한 새 신발에 넣은 채, 활짝 웃으며 매장을 떠났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말입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한 남자가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만 해도 사장님은 그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손님이 들어오시길래 누구지 하고 봤는데, 발을 가리키면서 신발 받았던 사람이라고... 완전 딴 사람처럼 왔길래 깜짝 놀랐어요”
면도와 이발을 한 남자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모습이었어요. 그때 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건 단 하나. 사장님이 손수 신겨준 이 신발이었습니다.
남자는 쭈뼛쭈뼛 어색하게 들어와 사장님을 향해 이렇게 왼발을 가리켰습니다.
그러고는 사장님 앞에 선 남자는 부스럭부스럭, 주머니를 뒤지더니 증명사진을 꺼냈습니다.
“돈을 구해 증명사진을 찍었고 다음 주에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러 간다고. 주민등록증 재발급해서 신발값 갚겠다고...”
그러니까 신분증조차 없이 거리를 떠돌던 남자는 그날 매장에서 낯모르는 사장님으로부터 신발을 건네받고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날이 밝자 돈을 구해 이발과 면도를 하고, 증명사진을 찍은 거였습니다. 신분증을 만들고, 일을 구하고, 신발값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장님은 남자가 어떤 처지인지, 무슨 사연으로 그날 맨발이 됐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요. 사장님이 신발을 내준 건, 비오는 거리에 사람을 맨발로 돌아다니게 둘 수 없다는, 그런 작은 연민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불경기에 자영업자들이 버티기에 돌입한 요즘, 사장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최근 들어 사장님은 근무시간을 오후 9시에 10시로 늘리면서 무리를 한 탓에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치료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
이날도 종일 비가 내린 탓에 제품을 한 개도 못 판 데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시력까지 나빠져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맨발의 남자를 본 사장님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맞는 신발을 찾아 건넨 거였죠.
덕분에 나흘 뒤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상황이 연출됐고, 심신이 지친 사장님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사장님이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남자와의 일을 올린 것도 그런 이유였죠.
“대상포진이 얼굴로 와서 진료를 받았는데 눈 시신경을 건드려 시력까지 떨어졌더라고요. 혼자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무리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장사도 안 되고 시력도 잃고 그래서 멘탈이 좀 나가 있는 상태였는데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니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리자... 싶어서 양말이랑 신발을 찾아서 드린 거예요”
그저 작은 나눔을 했을 뿐이라는 사장님. 그 작은 나눔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네티즌들은 ‘어느 매장이냐’ ‘돈쭐을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절대 무언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매장명을 밝히지 않겠다고 다짐어요.
새 출발을 준비하는 남자를 보면서 경기 침체로 위축됐던 마음을 떨쳐내고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장님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화제를 모았고 더 많은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 덕분에 또다른 기적이 일어났어요.
“여기저기서 보도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이 호전됐다는 거예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뿌옇게 보이던 눈도 이제 좀 맑아졌고, 대상포진으로 얼굴에 생긴 물집도 거의 다 사라졌어요. 응원 댓글 덕분에 힘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러고 다시 남성분이 찾아오진 않았는데, 또 오신다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어요”
자신이 선행을 베풀곤 오히려 감사하다는 사장님. 이런 분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습니다. 부디 두 분의 재회를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새 신발과 함께 새 삶을 선물 받은 남자분도 그리고 심신이 지쳐 있던 사장님도 더 행복한 모습이길 바라봅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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