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아파트' 개사해 떼춤…"대학 총학 선거야, 랩배틀이야" [르포]
로제 '아파트' 등 가사 바꿔 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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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야, 공연이야"…가두 유세 후끈
대학마다 총학생회 선거가 한창인 가운데 이날 2025학년도 전북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기호 1·2번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 '가두 유세' 열기가 뜨거웠다. 언뜻 보면 여러 래퍼가 패를 갈라 실력을 겨루는 '랩 배틀'을 연상케 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양측 캠프가 선보이는 떼창·떼춤을 구경했다. 일부는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날 해가 진 뒤엔 K팝 댄스·가요를 버무린 '버스킹(길거리 공연)' 같은 야간(오후 6시~8시) 선거전이 치열했다.
전북대에 따르면 지난 11일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이 대학 총학 선거 투표일은 오는 20일이다. 유권자는 학부생 약 2만명이다. 웬만한 군 단위 지자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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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유도" vs "인기투표"
새로 구성되는 총학은 학생회비와 학교 지원금 등을 바탕으로 축제·학술제를 비롯해 시험 기간 간식 배부, 명절 버스 대절 등 각종 행사·사업을 1년간 주관하게 된다. 익명을 원한 한 총학 관계자는 "선전탑을 세우고 유인물·현수막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선거 비용은 후보당 2000만~3000만원이 드는데, 각자 사비로 충당하는 것으로 안다"며 "총학생회장 등을 하면 특별히 메리트가 있다기보다 선거를 뛴 경험을 토대로 졸업 후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영업직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노래·춤으로 무장한 일명 '문선대(공연단)'를 앞세운 총학 선거운동을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선거에 무관심한 Z세대(18~29세) 참여를 이끄는 재기발랄한 운동 방식"이라는 옹호론과 "정책 알리기는 뒷전이고 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한 인기투표"라는 부정론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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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어필 부족" 지적도
문선대는 각 선본이 학내 춤·노래 동아리 학생 등을 발탁해 방향성·정책을 부각할 수 있는 노래와 율동을 짜고 준비하는 조직이라고 전북대는 전했다. 각 선본이 내건 공약은 캠퍼스 곳곳에 설치된 선전탑이나 플래카드에서 볼 수 있다. 이는 1980~90년대 운동권 중심으로 '독재 타도' '민족 해방' 등 사회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정치 투쟁에 치우친 총학 선거운동과는 확연히 달라진 풍속도라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이날 만난 전북대생 상당수는 공연단 위주의 길거리 유세에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대학 화학과 3학년 신지연(여)씨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며 "조금 전 가두 유세를 보고 선거와 후보에 관심이 생겨 선전탑을 살펴보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외교학과 3학년 이영재씨는 "학생이 선거를 즐기는 건 좋지만, 정작 후보가 연설·정책으로 어필하는 노력은 부족한 것 같다"며 "선거운동 기간이 2주일도 안 되다 보니 정책 토론회나 자료집을 관심 있게 안 보면 공약이 구체적으로 뭔지 알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기호 1번 '이유' 총학 구민기(전자공학부 4학년) 정후보는 "단편적인 인맥 선거가 아닌 후보 간 정책 토론회·설명회도 하고 있다"며 "가두 유세는 학우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고, 총학 선거는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기호 2번 '기대' 총학 조용천(기계설계공학부 4학년) 정후보는 "노래는 짧지만, 전북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며 "문선대 공연 등을 통해 후보자 성실성과 진심, 각 선본이 얼마나 단합이 잘되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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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0명…고려대 총학 선거 무산
하지만 전국 대학 대부분이 갈수록 총학 선거에 대한 참여와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극심한 취업난과 총학 활동에 대한 실망·냉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후보자가 없어 총학 선거 자체가 무산되는 대학이 적지 않다.
고려대 총학생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총학생회장단 선거 무산 공고를 냈다. 선관위는 "입후보자가 없어 내년 3월 재선거를 치르겠다"고 했다. 고려대 총학 선거는 2005년을 시작으로 이번까지 다섯 차례 무산됐다. 대부분 개표 요건 투표율(33%)이 미달하거나 후보자가 없어서였다.
연세대도 비슷한 이유로 2017~2019년 3년 연속 총학이 구성되지 못한 데 이어 2022~2023년 선거는 무산됐다. 서울대는 올해 후보 2명이 출마하면서 2022년 이후 2년 만에 총학생회장 선거를 치렀다. 지난해 11월 선거는 단독 후보가 출마했다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됐고, 지난 3월 재선거는 입후보자가 없어 종료됐다. 서울 주요 대학 중 2000년대 들어 총학을 꾸준히 구성한 곳은 성균관대를 제외하고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총학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부산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지난 6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총학생회장 A씨에 대해 회원 권리·의무를 박탈하는 제명을 결정했다. A씨는 부산대 총학생회 단체 명의로 클럽을 방문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이에 A씨는 최근 "징계 사유가 부적정하다"며 부산지법에 해임 관련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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