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피싱, 피말려 죽이더라"…빨대 꽂아 3200억 사기 전말
" 카지노는 구멍가게, 코인은 빨대 꽂고 털어먹기 너무 쉬운 사업. "
스캠(scam·사기) 코인과 보이스피싱을 결합해 1만5000여명에게 3200억원대 ‘투자 사기’ 범죄집단을 검거한 경찰 수사팀장은 영화 범죄도시4의 이 대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 14일 만난 최성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수사3계 가상자산전담수사팀장은 “무가치한 코인을 미끼로 잔인할 정도로 피해자들의 재산을 소진하고 나중엔 보이스피싱 범죄로 마른 돈줄까지 비틀어 짠 범죄”라며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피의자가 수백명이었지만 말단 가담자까지 5~7시간씩 조사하며 실체 파악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이 속한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L투자그룹(현 T사) 전 대표이사이자 유명 경제 유튜브채널 운영자 이모(44)씨 등 12명을 범죄단체조직, 특정경제범죄법(사기)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는 등 사기 조직원 215명을 검거해 지난달 말 검찰에 송치했다. 이씨는 62만6000명 구독자를 보유한 자·타칭 대한민국 파워 경제·경영 인플루언서다. 이 사건은 범죄집단으로 입건된 조직원만 215명으로 지난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최대 규모 단일 가상자산 사기 사건으로 꼽힌다.
전담팀이 이 사건을 맡게 된 발단은 지난해 2월 인천에 거주하는 40대 회사원 A씨가 이 리딩 피싱 조직 텔레마케터를 고소한 사건이었다. A씨는 이씨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식리딩 고객이 된 뒤 R코인 투자를 권유받았다.
“고급 정보로 알게 된 비상장 코인을 상장 전 구매하면 30배 수익을 보장한다” 등 감언이설에 속은 A씨는 같은 수법으로 S(이니셜) 코인에도 투자했고,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3억원을 모두 날렸다. A씨가 고소한 텔레마케터가 수원에 거주하고 있어, 이 사건은 인천에서 수원으로 넘어왔고, 전담팀엔 지난해 4월 A씨 사건이 배당됐다.
5개월 만에 전담팀은 중간관리책 B씨를 특정해 지난해 9월 경기도 구리시 소재 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B씨는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3개월여 만에 변호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B씨의 변호인은 총책 이씨가 붙인 변호사였다. 이씨는 범행 후 홍콩·싱가포르·호주 등지로 도피했으나 전담팀 추적 끝에 검거됐다. 검거 당시엔 26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하드월렛(hard wallet·오프라인 지갑)에 은닉하고 있었다. 수사 내내 혐의 일체를 부인하다 구속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압수자료 분석을 토대로 피해자가 수천명, 많게는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판단한 경기남부청 지휘부는 지난 4월 국가수사본부에 건의해 지난 4월 전국에 흩어져있던 ‘L투자그룹 리딩피싱 사기 사건’ 200여건을 전부 모아 집중수사하기로 했다. 이송받은 사건 기록의 양만 500쪽짜리 360권, 12만쪽에 달했다.
L투자그룹 리딩피싱 사기 사건의 범죄 수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이들은 우선 유튜브 채널 등으로 고객을 모아 수집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자체 개발·발행한 코인 4종 등 총 28개 코인 투자를 권유했다. 코인 시세조종(시장조성, MM·Market Making)팀을 가동해 가격을 띄웠다가 떨어뜨리는 형태로 내부자만 수익을 취한 뒤 유인팀을 투입해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며 또 다른 코인 투자를 종용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상팀은 시나리오에 따라 피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법인 계좌가 동결된다”는 허위로 꾸민 금융감독원 공문을 보여주며 신분증과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이렇게 확보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 몰래 대출을 일으켜 가로챘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이들의 덫에 걸려 코인 사기만 7번 당하고, 대출 사기까지 당한 피해자는 혼자서 12억원 손해를 봤다.
전담팀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전국 검경 최초로 가상자산을 기술적으로 분석해 이를 디지털 증거분석보고서로 문서화하고 각 코인의 사기성을 입증했다. 활용한 플랫폼은 가상자산 소스코드를 공유해 개발하는 깃 허브(git hub, 마이크로소프트 기반)다.
피해자 중엔 집중수사 전까지 잇단 불송치, 불기소 처분에 좌절하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전담팀에 감사를 표하며 택배로 갓김치를 보낸 사람도 있었다. 전담팀은 사기 기망 요건을 확인한 일등 공신으로 자체 제작한 ‘스캠코인 선별 체크리스트’를 꼽았다. 체크리스트는 ▶공개한 코인 백서에 따른 사업 진행 ▶비즈니스 모델 실현 가능성 ▶전세계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자료 등재 여부 ▶코인 발행·유통 및 상장거래소 건전성 여부 등으로 1~5점 만점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식이다.
황준원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3계장은 “2021년 7월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기남부청에서 출범한 가상자산 전담팀인 만큼 수사관들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간 수사 경험을 토대로 스캠 코인 범죄 수사의 기틀을 닦아 체크리스트를 제작했다”며 “비대면 고수익 보장, 손실 원금을 회복해주겠다는 투자 권유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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