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를 ‘야설’로…극찬 받은 소설가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오늘 늦을 거야. 극장에 다녀올 거거든.”
외출 채비를 마친 남편이 아내에게 얘기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표정은 온화하다. 하지만 집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그의 마음은 사실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아내의 ‘내연남’이 집을 방문할 예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집을 비워줬다. 마치 바람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남자는 그길로 거리를 배회한다.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8시간. 한나절이 훌쩍 넘는 방랑을 끝내고 그를 다시 맞이한 아내는 애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였다. 잠깐, 분노는 거두시길. 이 이야기는 온전히 소설에 불과할 뿐이니.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야기다.
‘율리시스’라는 이름은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인류가 가장 사랑하는 문학 작품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을 비꼬아 현대판 불륜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줄거리만 보면 뻔한 막장 스토리지만 세계 문학계는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율리시스’가 기존 문학이 미처 그리지 못한 세계를 구현했다는 이유에서다. 노벨연구소는 ‘최고의 책 100선’에 오디세이아와 함께 율리시스를 올리기도 했다.
엄숙주의 비웃듯 자유로운 성생활
1882년 2월 2일.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더블린 세무징수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이스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적 감각이 탁월했다. 첫 번째 단편 시 ‘엣 투 힐리(Et tu Healy)’를 썼을 때 그의 나이 고작 9살이었다. 천재적 글재주는 세상과 불화한다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빨리 시련이 찾아왔다. ‘엣 투 힐리’가 아일랜드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아일랜드 자치권을 위해 싸워온 정치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을 향한 애도시였다. 파넬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였지만, 유부녀와 불륜 사실이 공개되면서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와 함께한 동지들 역시 모두 등을 돌렸다. 파넬의 가장 친한 정치적 동료 팀 힐리는 비난 행렬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아일랜드의 독립은 한층 더 멀어졌다.
제임스 조이스는 분노했다. 파넬이 이끄는 아일랜드의 새로운 미래를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도덕적 결함이 무너뜨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문인은 글로써 얘기하는 법. 조이스는 종이에 9글자를 썼다. ‘Et tu, Healy’다. 고대 로마 줄리어스 시저가 브루투스에게 배신당해 죽을 때 외쳤던 말 “Et tu, Brute?(브루투스 너마저?)”를 빗댄 시. 바꿔 말하면, 파넬을 영웅 줄리어스 시저로, 팀 힐리를 배신자 브루투스로 묘사한 셈이다. 파넬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천재적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반대파는 뭣도 모르는 꼬맹이가 어른들 일에 함부로 나선다고 힐난했다. 조이스의 아버지 존은 시를 인쇄해 열심히 돌리다 직장을 잃었다. 이때부터였다. 조이스가 아일랜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조이스는 특히 보수적인 엄숙주의, 그리고 엄격한 성도덕에 매우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유망한 정치인, 아일랜드의 미래 파넬을 무너뜨린 그것이었다. 조이스는 엄숙한 더블린을 비웃듯 자유롭게 사랑했다. 호텔 청소부로 일하던 노라 버라클과 첫 데이트 때는 해변에서 전희를 나눴을 정도다. 그녀에게 보낸 ‘외설적 편지’는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진다.
“내 사랑스러운 작은 창녀 노라, 네가 엉덩이로 삽입당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돼서 기뻐. 그래, 그렇게 오랫동안 삽입했던 그날 밤을 기억해.”
누구보다 성적으로 자유로울 것 같은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후대에는 ‘욕망의 해방’ 극찬받아
조이스는 문학적 영감을 ‘성적 욕망’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렸다. 보수적인 문학계가 그에게 비난을 쏟아내도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성적 쾌락은 그에게 있어 종교의 신성함만큼이나 위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작 ‘율리시스’가 그랬고, 또 다른 그의 대표작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엄숙주의를 조소하고 교훈적 서사를 비틀어버렸다.
율리시스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누구인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요, 귀향길에서 숱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마침내 20년 만에 가족을 찾은 위대한 가장이다. 조이스는 그런 오디세우스를, 아내를 외도하게끔 ‘안내’하는 고개 숙인 남자에게 비유했다.
‘율리시스’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은 그야말로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예를 들어 성당 앞 바닷가에서 그는 우연히 한 여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에게 보일 듯 말 듯한 자세로 자위행위를 한다. 여자는 이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 성당에서 울리는 찬송가에 맞춰 육체적 관능미를 뽐낸다. 블룸은 아내 몰리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침대에 오른다. 누워 있는 몰리 엉덩이에 키스한다. 희미해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불꽃이 빛난다.
파격적인 줄거리의 ‘율리시스’는 보수적 영미권 사회를 뒤흔들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 조치를 받기도 했다. 영국 내무부는 책의 판매 금지 처분을 주도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 문학을 전공하는 변태 정신병자의 작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금서에서 해제된 건 미국의 판사 존 울지가 “외설이 아닌 새로운 장르의 실험이자 진지하고 정직한 책”이라고 판단한 뒤였다.
금서가 해제된 후,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종교와 관습에 의해 질식당하기 직전이던 ‘욕망’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다. 10년 동안 육체적 관계가 없었던 블룸은 죽어 있는 존재와 다름없었다. 정신적 사랑이 육체적 욕망보다 우월하다는 기존 관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 ‘율리시스’의 각 장은 섹스·수음·성적환상 등과 같은 온갖 섹슈얼리티 장치로 가득하다. 기존 문학이 결코 접근하지 못했던 곳이다.
블룸의 18시간은 단순한 한 남자의 방황이 아니었다. 종교가 태동한 이래 인간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던 ‘욕망의 이데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침내 아내 몰리의 몸에 입을 갖다 대면서 블룸은 다시 생의 의의를 발견한다.
‘율리시스’의 마지막 장 제목은 ‘페넬로페’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만나는 아내의 이름이다. 오디세우스가 염원한 가족을 향한 숭고한 사랑은, 블룸의 처연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성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걸 조이스는 그토록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은 종교화에만 의존하던 기존 관습을 타파하고 인간 육체를 미학으로 승화해 르네상스를 열었다. 종교적·도덕으로 일관된 문학의 세계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단아는 사슬에 묶여 있던 욕망을 해방했다. 누군가는 문학의 르네상스라 했고, 누구는 여전히 변태 외설 작가로 부른다.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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