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맛집 앞, 긴 줄 사라지나…"500엔에 샀다" 시간 사는 사람들 [줌인도쿄]
‘오픈런’ 경험, 있으신가요. 가게 문을 열기도 전, 문 앞에 줄서는 풍경을 보는 건 사실 일본에선 흔한 일 중 하납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면서부터는 맛집으로 이름난 곳에선 장사진 풍경을 정말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줄서기’에 익숙한 일본 사회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던 ‘패스트 패스(fast pass)’가 음식점에 도입된 겁니다.
지난 14일 오전 8시30분경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渋谷). 역에서 한 십여분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긴 줄이 눈에 띕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는 건, 수플레 팬케이크. 일반 팬케이크보다 부드러워 일본에선 '기적의 팬케이크'로도 불리는데, 이걸 맛보기 위해 댓바람부터 삼삼오오 줄을 서고 있는 겁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10곳에 점포를 두고 있는 플리퍼스(FLIPPER'S)가 오전 9시에 문을 열자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갑니다. 딸기와 메이플시럽을 섞은 버터크림을 얹은 수플레 팬케이크 한 접시에 1650엔(약 1만4800원). 주문한 팬케이크가 나오기까지 손님들은 또 3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불편한 기색 하나 없습니다.
500엔으로 '시간'을 산다?
같은 날 오전 11시경. 줄 서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쳐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이 있습니다. 호주에서 온 한 커플입니다. 줄을 안 서고 이들이 이용한 건 바로 500엔(약 4500원)짜리 패스트 패스. 온라인 사이트인 테이블체크(Table Check)를 통해 원하는 시간을 지정하는 대신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웃돈을 준 셈입니다.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에서 줄을 서지 않고도 놀이기구를 빨리 탈 수 있는 패스트 패스를 거리낌 없이 음식점에서 사용한 건데요. 이용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일본에선 인기 가게들은 줄을 선다고 들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찾아보니 돈을 내고, 줄을 안 서도 되는 예약 방식이 있더라고요. 5달러 정도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 싶어서 사용했어요.”
또 다른 패스트 패스 이용객인 영국인 케일럼씨도 이렇게 답하더군요. “런던은 보통 예약해서 가니까 줄을 설 일이 없거든요. 일본에 여행을 왔는데 시간을 아끼려고 썼어요. 가격도 이 정도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플리퍼스 운영을 담당하는 기무라 마오(木村麻緖) 베이크루스 그룹 푸드 비주얼 코디네이터는 “해외 손님들이 많은 편인데 패스트패스를 사용하는 손님들이 늘어나다 보니 예약 취소가 줄어들고,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줄을 설까, 돈을 낼까
음식점에 패트스 패스를 도입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구현한건 음식점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테이블체크'였습니다. ‘줄 서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 없을까’란 아이디어를 디즈니랜드의 패스트패스에 접목했죠. 올 1월 첫선을 보였는데, 지난 10월 기준 일본 유명 음식점 62곳이 참여했습니다. 이용 건수도 6만5000건을 넘어섰는데요. 연내 300개 음식점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해요.
참여 음식점 중엔 미셸린 가이드의 별을 받거나 '미셸린 빕 구르망'으로 선정된 곳이 많습니다. 시부야의 라멘집 쓰타(蔦)가 대표적이죠. 별 받은 라멘을 먹어보기 위해 가게 문을 열기도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기는 건 일상. 그러다 보니 처음엔 대기표를 뽑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요. 대기표를 받고도 줄을 서다 보니 이웃 가게들에 '민폐'가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일주일분의 예약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약 취소나 '노쇼(No show)’가 많았던 거죠. 그래서 390엔의 패스트 패스를 도입했는데, 이후 상황이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대부분 손님이 일본인인데요, 전체 손님의 절반이 '패스트 패스'를 사용하면서 매출도 30% 늘어난 겁니다.
패스트패스 가격은 가게마다 천차만별인데, 최대 2000엔까지도 한다는군요. 줄 서는 시간을 줄이고, 돈을 내고 음식점에 ‘입장’하는 패스트 패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쿄=김현예·정원석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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