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참견…따끔한 오지랖이 그립다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요즘은 어딜 가도 조심하게 된다. 괜한 일에 섣불리 나서는 추태로 비칠까 우려된다. 심지어 위협까지 감당해야 한다. 지난 6월 70대 경비원에게 욕설하는 초등생을 훈계한 40대가 해당 학생에게 흉기 공격을 당했다. 예전에는 중학생을 보면 피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초등학생으로 내려가야 하나 보다. 아동에 대한 훈육 허용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진다. 2011년 교사 체벌이 금지됐고, 2021년 징계권이 삭제됐다. 19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끔찍한 체벌에 대한 악몽을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으니 이런 금지가 반가울 따름이다.
다만 훈육과 학대에 대한 경계가 자로 재듯이 명확한지는 별개다. 얼마 전 경찰청은 ‘가정·학교 내 아동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발간했다. 명확한 기준을 내린다는 취지로 법원 판결이나 경찰 불입건 사례 등 총 172건을 15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는데 과연 실생활에서 이를 숙지하고 훈육하는 어른이 있을지 의문이다. 부모나 교사가 정당한 훈육을 경계한다면 스쳐 지나가는 이들은 아예 눈을 감을 것이다.
정신적 또는 신체적 위해가 가해지는 학대는 당연히 금지돼야 하지만 사회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선의의 훈계가 멈추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세대 간, 남녀 간, 이웃 간,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받고 스스로가 조심해야 한다. 모두가 외면해서는 제대로 된 공공 영역이 작동될 리가 없다.
듣고 싶지 않은데 지하철에서 유튜브 중계하는 어르신에게도, 알고 싶지 않은데 버스에서 남편 욕하며 통화하는 아주머니에게도, 보고 싶지 않은데 호프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뛰놀게 하는 젊은 부모에게도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개봉한 지 10년도 훌쩍 넘은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월트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정한 꼰대의 길을 보여준다. 비록 거친 말을 내뱉는 외고집의 노인이지만 갱단 위협을 받는 이웃집 소년을 보호하려 법의 힘을 빌리는 대신 스스로 희생한 그의 모습은 선의의 참견이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보수주의의 원조 에드먼드 버크는 건전한 시민의 자격에 대해 설파했고,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토크빌부터 최근 마이클 샌델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책임감과 자율성을 갖춘 시민이 강조됐다. 갖가지 분쟁을 법정으로 죄다 가져가서는 양질의 시민사회가 될 수 없다. 모든 갈등을 제도로 단숨에 해결하려 해서는 성숙한 공공 영역이 자리할 수 없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주변을 살피고 개인의 자유에 어울리는 상식을 서로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환자 곁을 떠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전공의에게 따갑게 꾸짖는 의료 선배가, 막말과 거짓을 일삼는 국회의원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정치 원로가, 주말마다 도로를 가로막고 소음을 일으키는 시위꾼들에게 차갑게 맞서는 평범한 시민이 보고 싶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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