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 다하지 않았다”…‘남학생’ 입학 거부 나선 여대들
유민지 2024. 11. 15. 15:43
“건물에 락커칠 좀 한다고 학교 망하지 않습니다. 학교가 망하는 길은 남학생 입학입니다” (성신여대 재학생 A씨)
“공대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공학으로 전환하자고 하네요. 학내에 해결할 문제가 산더미입니다. 곰팡이 핀 기숙사 문제가 남녀공학 전환보다 시급합니다” (동덕여대 재학생 B씨)
최근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논의한 것과 함께 성신여대가 2025년부터 외국인 유학생에 한해 남학생 입학을 허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재학생들이 반발 시위에 나섰다.학생들은 “여대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며 학교 본부에 ‘남학생’ 입학 철회를 요구했다.
동덕여대 측은 “공학 전환은 일방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한 일”이라 말했고, 성신여대는 “공학 전환을 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3일과 14일 쿠키뉴스와 만난 성신여대와 동덕여대 학생들은 대학 본부의 남자 유학생 모집 및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학교가 학생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남학생 입학을 추진을 시도한 데에 분노하고 있었다.
14일 성신여대 캠퍼스는 바닥부터 건물 벽면까지 곳곳에 ‘여대의 공학화를 중단하라’ ‘여성만이 성신을 비추고 성신이 세상을 밝히리라’ ‘우먼 온리(women only)’ ‘국제학부 외국인 남학생 입학 결사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대자보가 붙었고 락커칠이 돼있었다. 성신여대 입학처 건물 앞에는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앞에는 과잠바를 두는 시위가 진행 중이었다.
시위의 도화선은 남자 외국인 유학생의 성신여대 입학이다. 지난 1일 성신여대가 공개한 ‘2025학년도 외국인 특별전형 모집 요강’에 따르면, 2025년부터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는 국제학부에 남학생도 입학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총학생회는 “학교 본부는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그 누구와도 소통은커녕 (남학생 입학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여대의 소명 다하지 않아…“성차별 사라지면 소멸하겠다”
시위 장소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남학생 입학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여대의 소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학생 C씨는 “여대는 여성에게 교육권이 없던 시기 설립돼 지금까지 여성 교육을 위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며 “여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여성이 리더가 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이 가능한 공간”이라고 여대의 존립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여대의 소명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고도 했다. 재학생 D씨는 “여성의 안전한 교육환경을 보장하는 여대에 남학생 입학을 추진하는 것은 여성 교육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여대는 유리천장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모교 걱정은 우리가 하고 있으니, 외부인들은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졸업생들과의 연대와 함께 최후의 수단으로 수업 거부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성차별 해소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건 여성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라며 “국제학부 남자 유학생 입학 추진이 철회될 때까지 시위와 연서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의견 관철하겠다. 수업 거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동덕여대, ‘재학생’ 수업 거부 ‘졸업생’ 트럭 시위
최근 학교 본부가 남녀공학 전환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진 동덕여대는 재학생들의 공간 점거 및 수업 거부 시위 등 강경 대응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동덕여대는 재학생들의 과잠바 시위를 비롯해 졸업생들의 항의 트럭 및 졸업장 반납시위도 진행되고 있다. 이에 동덕여대 교무처는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강의를) 실시간 화상 수업이나 녹화 강의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동덕여대 캠퍼스는 긴장감과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교문 앞에 줄지어 선 근조 화환과 함께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진 않는다’는 피켓과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본관 앞에는 재학생들의 과잠바와 전공 서적 들이 놓여 있었고 숙명여대, 성신여대 등 타 여대생들이 연대의 의미로 놓아둔 과잠바도 보였다.
“형식적 성평등에 그친 대한민국…여대 더 생겨야”
재학생들은 학교 본부가 깊은 고민과 대안 없이 일방적으로 공학 전환을 논의한 사실을 규탄했다. 학교 발전을 위해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사항에는 응답하지 않고 공학 전환을 추진하려는 점도 비판했다.
재학생 E씨는 “동덕여대는 안전 문제로 학교를 24시간 개방하지 않고 있다. 공학 전환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학생 안전은 포기하겠다는 건지 아무런 말도 없다”며 “곰팡이 핀 기숙사, 시험 기간마다 보는 바퀴벌레와 벌레 물림, 전공과 학생 대비 교수 부족 등 산적한 현안이 많은데 이보다 시급한 게 공학 전환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수업 거부 대자보를 붙이고 있던 재학생 F씨는 여대의 존립 이유에 대해 여성이 아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만 하더라도 딥페이크 범죄 등 수많은 여성혐오 범죄가 발생했다. 형식적 평등만 있지 현실적인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은 성평등 기조와 어긋난다”며 “사회에 나가기 전에 여성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여학생이 아닌 인격체로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여대는 없어질 게 아니라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덕여대 측은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대해 “실제 진행된 사항이 아닌 ‘비전 2040’ 추진 과정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공학 전환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으며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소통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입장을 밝혔다.
성신여대 측은 “국제학부 설치는 공학 전환과 무관한 사안”이라며 “현시점에서 공학 전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부 차원에서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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