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음모' 복지장관·'개인변호사' 법무차관…트럼프 '마이웨이' 인선에 공화당서도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또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전력을 가진 인사들을 주요 고위 보직에 지명했다.
트럼프는 14일(현지시간)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해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장관에 지명했다. 아울러 도덕성 논란 등을 빚는 맷 게이츠 하원의원의 법무장관으로 지명한데 이날은 법무차관에 자신의 ‘성추문 입막은 돈 지급 의혹’ 사건의 변호인 토드 블랜치를 지명했다. 트럼프의 잇따른 ‘마이웨이’식 인사에 대해 공화당 내에서도 “상원 인준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신 음모론’ 유포했던 ‘기행’ 복지장관
복지부(HHS)장관에 지명된 케네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펼치며 백신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을 펼쳐왔던 인물이다.
케네디는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던 인사다. 그래서 이번 인선이 ‘보은’ 성격이란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공중보건과 관련한 속임수와 허부 정보에 관여한 제약회사들에 의해 짓밟혀왔다”며 케네디를 두둔했다. 케네디는 이밖에도 새끼 곰 사체를 뉴욕 센트럴파크에 유기하거나 고래 사체의 머리를 잘랐다는 일화 등 각종 기행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도덕 논란’ 법부장관 이어 ‘개인 변호사’ 차관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개인 변호사 토드 블랜치를 법무차관으로 지명하고, 또 다른 개인 변호사 에밀 보브를 법무부 수석 부차관보에 지명했다. 이들은 트럼프와 관련한 성추문 사건, 기밀문서 유출 사건 등 각종 ‘사법 리스크’를 방어해왔던 인물이다.
트럼프는 블랜치에 대해 “훌륭한 변호사로, 법무부의 지도자가 돼 망가진 법무 시스템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 등이 잘못된 법률 시스템 때문에 비롯됐다는 인식을 내포한 말로 풀이된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 법무부를 자신을 수사한 기관과 정적에 대한 ‘보복의 첨병’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말이기도 하다.
특히 이날 인사가 전날 맷 게이츠 하원의원의 법무장관 지명에 이어 나왔다는 점에서 공화당에서도 난감해하는 기류가 읽힌다. 게이츠 의원은 지나친 정치편향성 논란과 함께 미성년자 성매수 등 비위 의혹으로 윤리위 조사를 받는 등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선 상태다.
공화당 소속 케빈 크레이머 상원의원은 “게이츠가 결승선(인준 통과)을 넘기까지 길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상원 법사위 소속 존 코닌 의원은 “성매수 의혹에 대한 윤리위 보고서에 대한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가 저승사자’엔 前증권거래위원장
트럼프는 또 이날 제이 클레이턴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주요 연방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으로 지명했다. 이 자리는 대형 금융사가 밀집한 뉴욕 맨해튼을 관할하며 ‘월가의 저승사자’로도 불린다. 대형 정치 사건도 이곳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당 인사에 대해 “자신을 재판에 넘긴 이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던 차기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자리”라며 트럼프가 검찰권을 사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트럼프는 이밖에 재향군인의 복지를 담당하는 보훈부 장관엔 이라크 파병 경험이 있는 변호사 출신의 더그 콜린스 전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그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첫 탄핵 재판을 받을 때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8명 중 한명이다.
에너지 담당 내무장관엔 ‘석유 재벌’ 소통 창구
트럼프는 또 이날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행사에서 “내무부 장관에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를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내무장관은 추후 임명될 것으로 알려진 ‘에너지 차르’와 함께 자국 내 석유 및 가스 시추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화석연료 시추를 통한 에너지 가격 인하는 트럼프가 제시한 물가 대책의 핵심이다. 이날 내무장관으로 지명된 버검은 트럼프 캠프에 거액을 기부한 석유회사와의 연락책 역할을 해온 사업가 출신이다. 특히 그가 주지사로 있는 노스다코타는 셰일을 이용한 새로운 시추 기술이 개발되면서 석유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한 곳이다.
‘휴회 임명’으로 검증 우회하나?
트럼프가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 인사들을 잇따라 지명하는 것과 관련, BBC는 이날 ”트럼프가 ‘휴회 임명’을 통해 상원의 인사 검증 과정을 우회해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인사들의 임명을 위해선 상원의 인준이 필요하다. 다만 정부의 업무 공백을 막기 위해 상원이 휴원 중일 경우 대통령이 공직자들을 인준 없이 임명할 수 있다는 일종의 비상 대처 조항이 있다.
트럼프는 이와 관련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선거 전 “원내대표가 되려면 후회 임명에 협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공화당의 원내대표로 선출된 존튠 의원 역시 “원활할 내각 구성을 위해 휴회 임명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그러나 논란의 지명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상원이 대통령의 예외적 권한인 휴회 임명에 협조할 경우,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상원 역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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