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아름다움 저편에 누군가의 고통이 있다
노예 학대·노동력 이용해 채굴
화장·보톡스도 '파괴하는 행위'
아름다움 집착땐 삶 불행해져
"물보다 유용한 것은 없지만, 물로는 거의 아무것도 살 수 없고 어떤 것과도 교환할 수 없다. 반대로 다이아몬드는 사용 가치는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재화로 쉽게 교환할 수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에 쓴 구절 중 하나다. 다이아몬드-물의 역설, 더 일반적으로 ‘가치의 역설’로 알려진 이론이다. 물보다 효용가치가 훨씬 적은 다이아몬드가 물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는, 즉 훨씬 높은 교환가치를 지니는 현상을 지적한다. 오늘날 경제학에서는 한계이용이론에 따른 희소성이 원인으로 설명된다. 즉 다이아몬드가 더 희소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소비했을 때 인간이 얻는 만족감이 더 크고 따라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족감은 일반화하기 어려운 가치다.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를 쓴 미국 칼럼니스트 케이티 켈러허는 가치의 역설을 언급하며 어느 것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에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이유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보석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인지된 욕구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기꺼이 다이아몬드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이유는 이미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가 가치 있다고 정했기 때문이라며 스토리텔링의 힘, 매력적인 광고, 집단 숭배가 다이아몬드의 물리적인 특성과 결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욕망을 부추기는 데 있어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그 가치가 인간 욕망의 산물이라는 켈러허의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켈러허는 아름다운 물건들에는 인간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고 욕망의 추악함이 바로 아름다움의 일부이자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일레인 스캐리 하버드대 교수도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갈구의 대상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999년에 출간한 철학책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On Beauty and Being Just)’에서 아름다움은 우리를 사소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복제, 재생산, 모방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켈러허는 책에서 다이아몬드를 포함한 보석, 거울, 꽃, 화장, 향수, 대리석, 도자기, 실크, 유리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두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결부된 사물들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욕망 때문에 인간은 많은 비극의 역사를 낳았고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했다.
켈러허가 추한 역사를 언급한 이유다. 18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브라질에서 노예 노동력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채굴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까지 노예를 끌고 와 다이아몬드를 캤으며 이 과정에서 구타와 감금 등 학대를 서슴지 않았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가공회사 드비어스는 영국인 세실 존 로즈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해 만든 회사였다. 드비어스는 죄수 노동력을 활용해 다이아몬드를 생산했는데, 죄수인 광부들이 다이아몬드를 삼키거나 몸에 숨기지 못하도록 매일 밤 발가벗긴 채 쇠사슬에 묶어뒀다. 기본적인 존엄성마저 침해당하는 가혹한 환경하에서 노동자 수백 명이 드비어스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장은 아름다워지려는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다. 오늘날 널리 성행하는 보톡스는 얼굴에 독소를 주입해 만드는 일시적인 신체 변형이다. 켈러허는 화장의 의미를 생각하며 자신이 고등학교 때 입었던 탱크톱에 적힌 문구를 떠올린다. ‘빨리 살고, 예쁠 때 죽어라(Live Fast, Die Pretty).’ 건물의 미적 아름다움을 더하는 대리석도 인간에 해를 끼친다. 대리석이 깨지면서 생기는 먼지는 시리카 결정 입자를 공기 중으로 방출해 폐 질환을 유발한다.
켈러허는 예술, 디자인 분야의 유명 칼럼니스트다. 그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보그, 하퍼스 바자 등 여러 매체에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주제로 많은 글을 기고해왔다.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다루는 소재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켈러허가 오랫동안 축적한 역사적, 인문학적 지식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거울을 설명할 때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이론을 풀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어린 시절 자아의 발달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몸이라는 경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일어난다며 라캉은 이 시기를 인간 발달의 ‘거울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고 설명한다.
켈러허가 오랜 시간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탐구한 끝에 내린 결론도 흥미롭다. 그는 지금껏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탐욕으로 타락하지 않았거나 세월의 화학작용으로 흠집이 나지 않은 사물은 본 적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아름다움은 결국 일시적이며 덧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켈러허는 스스로 10대인 어렸을 때부터 화장을 했다며 더 예뻐지고자 했던 당시의 자신을 담은 사진을 지금 보면 그 자체로 얼마나 예뻤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자신에게 어떤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은 삶의 희망과 목적의식도 준다고 말한다. 그는 아름다움과 우울증은 자신의 삶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이며, 궁극적으로 욕망과 혐오는 짝을 이루어 존재함을 깨달았다고 역설한다. 켈러허의 깨달음은 오늘날 소비 지향적인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과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 있어 흥미롭다.
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 케이티 켈러허 지음 | 이채현 옮김 | 청미래 | 384쪽 | 2만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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