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공급 거부한 제약사...한국이라고 안전할까

이동근 2024. 11.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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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약이 알고 싶다] 왜 우리는 약에 비싼 생명 가격표를 갖게 되었나

지난 글에서 최근 개발되는 고가의 유전자치료제에 대해 살펴봤다. 비싼 유전자치료제는 한 명의 치료비용에 수십억 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비싼 약값에 비해 제약사가 약을 만드는 과정에 노력과 비용은 크지 않다는 점도 살펴봤다. 이토록 비싼 치료제, 무엇 때문일까? <기자말>

[이동근]

 <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 민음사
<생명 가격표>의 저자인 보건경제학자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은 '인간은 생명의 값을 어떻게 매길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경우에 생명 가격표가 매겨지고 있으며, 그 가격표를 책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의 생명 가격표는 어떻게 책정되고 있을까?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책정할 신약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매번 제약사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제약사와 정부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책정된 우리 생명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작년 한 해 급여화된 의약품의 생명 가격표를 공개했다. 건강한 삶을 1년 누리기 위해 정부가 건강보험 급여를 결정하는 기준은 약 4000만 원이었다. 예를 들어 항암제가 암환자의 건강한 삶을 5년 연장한다고 가정하면, 정부는 항암제의 적정가격을 2억 원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의약품에 높은 생명 가격표 매길까

과연 의약품을 통해 책정되는 생명 가격은 공정한 것일까?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이 정도 수준의 생명 가격표가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2023년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598명에 달했다.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장에서 일을 했다면 다치지 않았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었다. 기업들이 노동자의 생명을 의약품에 적용되는 생명 가격표 수준으로 적용했다면, 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응급실 뺑뺑이다. 응급환자가 구급차를 탔지만, 1시간 넘게 입원할 응급실을 찾지 못해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의약품에 책정되는 생명 가격표 수준으로 주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의료기관에 충분히 투자했다면, 제대로 된 치료 없이 허무하게 생명을 떠나보내는 일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의약품을 구매하기 위해 들이는 돈에 비해 기업과 정부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들이는 비용은 매우 적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반대로 질문하고 싶다. 왜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다른 분야의 노력에 비해 의약품을 사용하는 일에 이렇게 비싼 가격을 부여하고 있을까? 정부가 착해서는 아닐 것이다.

독점시장의 폐해
 브라질의 한 약국에 진열된 제네릭의약품
ⓒ 위키미디어 공용
엔비디아라는 기업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챗지피티'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다. AI를 개발하려면 동시다발적으로 연산할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한데 엔비디아는 관련 생산기술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핵심적인 회로 설계 또는 하드웨어 관련 기술을 특허 등 지식재산권으로 묶어두면, 관련 기술은 엔비디아만 개발이 가능하다. 독점적 공급시장과 AI를 개발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높은 수요 덕분에 엔비디아는 고도화된 GPU에 엄청난 가격을 매길 수 있다. AI 개발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엔비디아의 값비싼 GPU를 구매하는 것이다.

제약산업도 마찬가지다. 제약기업은 특허 등의 제도를 통해 신약을 독점적으로 생산한다. 1990년대 이후 주류 제약산업이 바이오의약품으로 넘어가면서 의약품 독점화는 더 견고해지고 있다.

의약품이 단순한 화학물질에서 단백질이나 세포 수준으로 복잡하게 변화하면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이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신약 개발 뒤 몇 년 만에 후발 제약사들이 유사 의약품을 개발해 독점문제가 다소 해소되었는데, 지금은 신약이 개발되어도 장기간 독점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강력한 독점권을 가진 제약사는 정부와의 의약품 가격 협상에서 강력한 협상력을 가진다. 게다가 많은 매체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찬양하며 신약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하루빨리 치료를 원하는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정당한 요구는 정부에 또 다른 압박 요소다. 제약사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독점적 지위에서 비싼 약값을 당당히 요구하고, 정부는 협상테이블에서 판판이 제약사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유전자치료제 비싼 가격에 관심 가져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 제약산업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 정부는 제약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쳤지만, 한국 제약산업은 오랜 기간 불모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백신이나 치료제 생산에서 한국 기업들이 일정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 제약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다.

정부가 20년째 밀어붙였던 제약산업 육성이라는 순애보가 이제서야 성과를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하고 비싼 약값을 받아내며 대박을 칠 거라는 믿음에 모두가 한마음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공범이 되는지도 모른다.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제약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신약이 외국에서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내 의약품 가격을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하고 높은 약값을 책정해 주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제약산업의 독점력은 강해지며, 우리는 높은 가격의 신약을 그냥 받아들인다.

게다가 언론은 약의 가격을 다루면서, 제약사의 탐욕으로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이나 환자가 겪을 어려움에 대해 주목하기보다 수억 원짜리 약을 만드는 제약사의 주가와 제약산업의 높은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제약 자본의 응원단장이 되도록 부추기는 행위다.

우리는 유전자치료제의 비싼 가격에 놀라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제약사의 높은 이윤율과 주가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낸 보험료를 제약사들이 쉽게 가져가는 문제 때문이어야 한다.

방법은 분명히 있다
 2017년 6월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산소 마스크를 쓴 활동가들이 "우리의 생명에 가격을 매기지 말라"는 팻말을 들고 낭성섬유증 치료제 오캄비가 공급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유전자치료제 가격은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비싼 치료제 가격은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연구에서 개발 진행 중인 유전자치료제의 임상시험들을 정리하여 향후 미국에서 유전자치료에 대한 지출 규모를 예상한 바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향후 10년 이내에 연간 유전자치료제로 지불되는 비용이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약 204억 달러(약 28.6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규모에서 100배 가까이 급증한다는 전망이다. 이미 수많은 유전자치료제들이 개발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수년 내에 값비싼 유전자치료제들이 쏟아질 것이며, 이에 따라 환자를 살리기 위한 비용은 사회적 문제가 될 우려가 크다.

몇 년 전에 오캄비라는 낭성섬유증 치료제를 두고 제약사가 지나치게 비싼 약값을 요구하여 영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바 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의약품 가격을 수용하지 못하자 제약사는 해당 약뿐만 아니라 제약사가 보유한 다른 낭성섬유증 치료제 전부를 공급거부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 사태의 원인이 제약사의 독점적 지위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의약품의 대안적 생산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치료제에 대해 접근성은 높이면서 재정적 문제는 해소할 우리만의 준비가 필요하다. 방법은 분명히 있다. 향후 우리에게 닥칠 위기에 대해 인식해야 하며, 우리 사회에 더 나은 의약품 생산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지구적 연대와 협력도 필수다. 앞으로 닥칠 위기를 헤쳐나갈 준비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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