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 디저트가 없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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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내 몸의 수치는 건강검진 기준 정상범위다. 그러나 근육량은 간신히 평균이고 체지방은 평균을 넘기기 직전이니 아주 훌륭하다고는 못한다. 숙제 하나를 못 끝낸 기분이었다.
그러다 책모임 단톡방 멤버들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지방을 잘 태우는 몸으로 바꾸고 근육을 늘려주는 다이어트라고 했다.
첫 3일은 단백질 쉐이크 4회와 허용음식만 먹을 수 있다. 평소 고봉밥을 먹고 식후 디저트를 절대적으로 챙기는 나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잠이 덜 깬 아침, 약한 불에 웍을 올리고 허용음식인 양배추, 양파, 두부를 대충 썰어넣은 뒤 뚜껑을 닫는다. 10분 후에 보면 야채는 자체 수분으로 데쳐졌고 두부는 포실포실 소보로가 된다.
▲ 양배추, 양파, 두부에 후추와 올리브유만 뿌린 건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침식사가 된다 |
ⓒ 최은영 |
정정한다. 남루하지 않다. 단순한 재료의 본질적인 맛을 이토록 기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나 못하는 걸 해낸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진다.
두부는 쨍한 양념 조림을 끼얹어 먹는 게 제일인 줄 알았다. 하다못해 노릇하게 구워 파간장이라도 듬뿍 찍어야 했다. 이름이야 두부구이, 두부조림이지만 두부가 오롯이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했다.
그저 수분만 좀 날려서 후추와 올리브유를 뿌린 두부는 그 자체로 너무 훌륭한 주인공이었다. 양파와 양배추 역시 그랬다.
다이어트 3주차다. 허용음식이 훨씬 많다. 그랬어도 내 아침식사는 양배추 중심의 데친 푸성귀다. 여기에 삶은 달걀과 고구마를 추가한다. 전날 저녁에 남은 찌개에 식은 밥을 말아 먹고 후식으로 몽쉘통통과 아메리카노를 먹었던, 혹은 애들이 남기고 간 잔반 처리반이었던 아침이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도 안난다.
좋은 식사를 챙겼다는 자체가 기분을 산뜻하게 한다. 그 하루를 좀 엉망으로 산다 해도 새로만든 아침 루틴이 최소한의 하방지지대가 된다. '나를 돌본다'는 추상적인 문장이 주방에서 구체적인 물성으로 다가온다.
다이어트 2주차에 내 생일이 있었다. 케이크를 한조각 먹었더니 입과 머리에서 폭죽이 터졌다. 케이크가 이렇게 화려한 맛이었구나. 매일 몽쉘통통을 먹다가 케이크를 먹었다면 결코 몰랐겠다. 일상을 담백하게 세팅하면 어쩌다 있는 작은 이벤트도 크게 다가올 거 같다. 요새말로 가성비, 가심비 다 챙기는 방법이다.
허용음식 내에서는 맘껏 먹어도 된다기에 진짜 그랬다. 아기 머리만한 양배추 한 통을 혼자 이틀 만에 다 먹기도 했다. 배고픈 날이 한번도 없었는데 2kg가 그냥 빠졌다. 매끼 챙기던 디저트가 2kg였나보다.
처음으로 디저트와 단절된 3주를 보냈다. 뭔가를 더하는 거보다 빼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단절의 매력이었다. 내 의지로 무언가를 단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가 무너지는 순간에 나를 잡아줄 거란 믿음도 된다.
음식이 슴슴해지니 생활까지 슴슴해진다. 인공적으로 달고 짠 음식들은 실제로 순간적 쾌락을 확 올렸다가 얼마 안 지나 그전보다 뚝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올라가기 위해 비슷한 음식을 찾게 된다. 그 널뛰기가 멈췄으니 삶이 고요해졌다는 느낌은 과학적인 실제다.
디저트를 끊으며 느낀 허전함은 잠시뿐이었다. 널뛰기가 끝난 자리에 가볍고 투명한 기운이 자리 잡았다. 단맛 없는 삶이 주는 고요함은 내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이 묘한 평화, 조금 더 익숙해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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