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골프가 고약한 이유
[이충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과 이틀 후 골프장을 찾았다가 언론에 포착되자, 대통령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회동을 준비하려고 8년 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고 밝혀 거짓 해명 논란을 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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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회동을 준비하려고 8년 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는 대통령실 설명이 나올 때부터 의아했다. '트럼프 리스크'의 직격탄을 맞게 될 우리 정부의 대응책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데, 기껏 나온게 골프라니. 새로 짜일 트럼프정부 진용과 정책 변화, 그에 따른 우리의 통상·안보 전략 재조정 등 숙고해야 할 많은 대책 가운데 최우선 순위가 골프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트럼프 1기 때 친교 차원에서 골프를 활용한 아베 전 일본 총리 사례를 벤치마킹했다는 대목은 더욱 기가 막힌다. 당시 아베가 트럼프의 환심을 산 건 골프보다는 수십 억 달러의 대미 투자 보따리였다. 트럼프가 아무리 골프광이라해도 아베가 순금 장식을 한 골프채를 줬다고 쉽게 넘어갈 위인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마치 트럼프와 골프를 치면 한국에 드리운 먹구름이 사라질 것처럼 말하는 대통령실의 인식이 한심스러운 것이다.
골프 친 시점과 배경, 모두 부적절
이런 포장조차 실은 여론을 호도하려는 거짓 해명이라는 게 금세 탄로났다.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 전에도 여러 차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를 주술에 심취한 윤 대통령 부부의 '뛰어난' 예지력으로 봐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언론이 대통령 골프 제보를 받고 현장 취재에 나서자 놀라서 둘러댄 게 '골프 외교'일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개인 취미 활동을 국익외교인 것처럼 미화한 셈이다. 재작년 미국 순방중 윤 대통령의 바이든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날리면'을 급조한 것과 뭐가 다른가.
물론 대통령이 골프를 한다는 게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골프를 다시 시작했으면 당당히 사정을 공개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스스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남쪽무인기의 평양 침투를 주장하며 '보복조치'를 밝힌 다음날 골프장을 나갔다든지, "김영선 공천 줘라"는 육성 파일이 공개된 직후와 대국민사과 기자회견 이틀 뒤 골프를 친 사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안보위기에 적잖은 군 장성과 장교들이 골프장 예약을 취소한 마당에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버젓이 골프를 쳤다는 걸 좋게 봐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골프를 좋아한 이들도 많았지만 아무 때나 한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적인 이미지였지만 골프를 무척 좋아해 시간이 나면 청와대 앞뜰에서 골프채를 휘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골프를 중단하고 휴가 때만 잠깐씩 쳤다. 스포츠마니아로 골프장을 자주 찾을 것 같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취임 후 골프를 중단했다. 좋아하던 테니스도 국정이 어려울 때는 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지금 놓인 처지를 생각하면 골프를 칠만큼 한가한 상황인지 의문이다.경기침체로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 부부의 각종 의혹으로 민심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었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재집권과 남북간 긴장 등으로 국민들은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다. 한데 정작 식은땀을 흘려야 할 윤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고민도, 근심도, 걱정도 보이지 않는다.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선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말기를 떠올리게 하는 비상한 시국이다. 전국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교수 시국선언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국민으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통령이 부끄럽고 참담한 존재가 됐다." 윤 대통령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위에 서 있다. 누구 말대로 골프 칠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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