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왜 살아? " 문득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고 싶었던 적이 없냐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하는데 덜컥 겁이 나더군요. 멍한 아내의 눈을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대답을 잘해야 할 텐데….
그런데 정말 저도 왜 사는지 모르겠더군요. 아내의 병시중을 들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다니요. 삶의 의지를 잃은 아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요?
최의종(43)씨의 아내는 7년 전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이 심해지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죠. 게임회사에서 일하며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최씨였습니다. 무너진 아내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공부를 시작합니다. 의대 교과서부터 논문까지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는데요, 남편의 노력 덕분에 아내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최씨는 긴 시간 우울증과 싸우면서 누군가 조언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병원에만 의존하기에는 막막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죠. 책『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라디오북)를 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당사자나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용기를 냈다”고 말합니다.
부부 사이엔 14세, 10세 두 아이가 있어요. 아내의 투병 이후 네 가족은 더 끈끈해지고 애틋해졌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아내를 살리기 위한 남편의 눈물겨우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 내 아내는 우울증입니다
Q : 우울증이 있기 전,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A :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입담이 좋아서 어딜 가도 인기가 많았죠. 일할 때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내 직업이 임상병리사거든요. 조직검사로 병명을 밝히는 일을 하는데, 당시 암센터에서 근무했어요. 중증 암환자를 매일 만나면서 언제부턴가 그들의 좌절감을 같이 느끼거나, 돌아가신 분을 보며 자책하더라고요. 전 그것도 모르고 “우리 아내 직업 너무 멋있다” 하고 다닌 거죠. 남편이 좋아해 주니 그만두지도 못했던 거 같아요.
Q : 언제 아내에게 우울증이 생긴 건가요? A : 첫째 아이가 여섯 살, 둘째 아이가 두 살 됐을 때 터져버렸어요. 처음엔 산후우울증인가 싶었는데 돌아보니 그 전부터 증상이 있었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매일 쳇바퀴 돌 듯 살았거든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잘 못 챙겨 먹었죠. 체력과 정신력이 한계에 부닥치면서 무너져 내렸어요.
Q : 어떤 모습을 보고 “아내가 우울증이구나” 알아챘나요? A : 말수가 확 줄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더라고요. 마네킹처럼 외부 자극에 반응을 안 해요. 불러도 대답 없고 그저 허공만 봐요. 2~3시간을 멍하니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알게 됐죠.
Q : 바로 병원에 갔나요? A : 아뇨. 당시만 해도 정신병원에 선입견이 클 때였어요. 특히 병원에서 일하는 아내 입장에선, 정신과에 가면 직장에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저도 “병원 가자”고 말하는 게 상처가 될까 봐 삶의 방식을 바꿔보자고 한 거죠. 제가 집안일을 해서 아내를 쉬게 해주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요.
Q : 남편으로선 충분히 할 법한 선택이에요. 그래서 아내에게 도움이 됐나요? A : 전혀요.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어요. 제가 집안일을 다 하면서 아내는 움직일 일이 더 없어졌어요. 생활 리듬이 깨진 거죠. ‘집안일도 못 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때부턴 방에 틀어박혀 울기 시작했어요. 본인도 왜 우는지 모르겠대요. 울다 지치면 자고, 일어나면 또 울어요. 무슨 일 나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먼저 “병원에 가자”고 했어요. 발병하고 병원 가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어요.
━
✅ 죽고 싶다는 아내, 그를 말리는 남편
Q : 병원에 갈 때, 아내 상태는 어땠나요? A : 숨을 잘 못 쉬었어요. 손발 떨고, 말 걸거나 문 닫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요. 항상 최악을 상상하며 걱정하는데, 회사에서 전화만 와도 “나 때문에 환자에게 문제 생겼나” 확대 해석하더라고요. 나중엔 대인 기피증이 오고, 온종일 잠만 자요. 밥을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느껴진대요. 먹지 않으니 점점 말라가고, 이 상태가 계속되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Q : 죽고 싶다는 말을 남편에게도 했나요? A : 그 말을 달고 살았어요. 온몸을 바르르 떨며 얘기하는데, 안쓰러워 눈물이라도 글썽이면 ‘남편이 더 슬퍼하기 전에 끝을 내자’ 또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진심으로 아내를 위로하며 마음을 달랬어요. 그런데 “죽고 싶다”는 말은 차라리 괜찮습니다. 도와달라고 SOS 치는 거거든요. 문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때죠. 주로 캄캄한 밤에 일이 생겨요. 새벽 4시쯤 거실 창문을 열어놓고, 의자 위에 올라가 창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거 보면 진짜 미쳐요.
Q : 정말 놀랐을 거 같은데 A :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요. 온 집 안을 뒤져서 칼, 가위처럼 날카로운 물건을 숨겼어요. 창문도 안 열리게 잠그고, 움직이면 소리가 나도록 장난감 방울을 달기도 했습니다. 베란다는 이런저런 물건을 잔뜩 쌓아서 아예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았고요.
Q : 아내는 나중에 그 사건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A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넷플릭스)에서 우울증에 걸린 정다은(박보영)이 찻길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본인은 모르거든요. 똑같아요. 아내도 기억이 전혀 없대요. 약 기운이 떨어진 채 새벽에 깨버리면 통제가 안 되는 거죠. (계속)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남편은 우울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음식물처리기를 샀습니다. 왜 였을까요?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 보세요. 우울증 극복을 위한 의외의 생활 꿀팁부터 식습관, 운동까지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8
■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더, 마음'의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버님 편히 가시게 박수!” 이 가족의 특별한 ‘임종 MC’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5022
불륜에 빠지는 대화법 있다…섹스리스 부부에 생긴 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4426
파혼하고, 쓰레기 집 갇혔다…‘미투’ 공무원의 마지막 선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543
신기하다, 모두 콧방울 봉긋…성공한 CEO 얼굴의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7758
“20점 맞으면 이혼할 상이다” 위기의 부부 알려줄 테스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4427
은퇴하고 ‘노추’ 될 겁니까? 자식에 이 돈은 꼭 받아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