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나와 상관없는 기후변화?… 우리 몸과 뇌도 변화시킨다

맹경환 2024. 11. 15.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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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후변화는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

저자는 "기후변화는 우리 밖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인용한 다양한 연구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어떻게 저하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들은 "기후 재난이 우리의 뇌, 감정, 행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결코 기후변화를 미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 책의 원제이기도 한 '자연의 무게'를 느끼고 지구에 온전히 공감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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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 김재경 옮김
추수밭, 384쪽, 2만2000원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기후변화는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 북극 빙하가 녹아내려 북극곰이 터전을 잃고, 미국 서부 지역에 대형 산불이 매년 발생해도 나와는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여름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도 에어컨만 있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신경과학자이자 환경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우리의 이런 안일한 생각에 경종을 울린다. 기후변화가 바로 내 몸과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저자는 “기후변화는 우리 밖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인용한 다양한 연구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어떻게 저하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UCLA 경제학과 박지성 교수는 최근 미국 뉴욕시 학생 100만명의 데이터를 모아 15년 동안 최소 50만명이 시험날 평소보다 높은 기온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국 학생 1400만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폭염 속에서 객관적 판단에 대한 기대는 허상이었다. 캐나다 오타와대학 연구진은 미국 43개 도시 250여명의 심사관의 망명심사에서 기온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4년치 판결 20만건을 분석하자 실외 기온이 화씨 10도(약 섭씨 5도) 증가할 때마다 심사관이 우호적인 판결을 내릴 확률이 7% 가까이 떨어졌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뤄진 가석방 심사에서도 기온이 오를수록 가석방을 허가할 확률은 곤두박질쳤다. 저자들은 과학적 이유도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섭씨 39도 이상이면 조직 구조에 변형이 생긴다. 뇌는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거기에는 인지 능력을 과감히 희생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기온은 인간의 공격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연구한 결과는 흥미롭다. 같은 팀 타자가 공에 몸을 맞았을 때 우리 투수가 상대 팀 타자를 고의로 몸에 맞히는 보복 행동에 나설 확률은 경기 당일 기온에 따라 달라졌다. 섭씨 13도인 날에는 투수가 상대 타자에게 복수할 확률은 22%였지만 35도인 날에는 그 확률은 27%까지 올라간다. 연구의 결론은 “열기는 도발에 대한 반응을 강화한다. 열기는 복수를 예고한다”였다. 도시 기온이 높아질수록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올라가고, 연인이나 배우자에 의한 폭행도 증가한다는 결과도 있다. 기온 변화가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세로토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온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질병도 생겼다. 대표적인 게 아메바성 수막염이다. 원인은 ‘뇌를 먹는 아메바’로 불리는 네글레리아 파울러리(N. 파울러리)라는 생물이다. N 파울러리는 섭씨 27도는 돼야 생존할 수 있으며 섭씨 46도까지는 거침없이 성장한다. 태아 시절 자궁 내에서 폭염을 경험 아이는, 여아는 우울증 가능성이 30배 높았고 남아의 경우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가능성이 60배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된다.

손쉽게 에어컨을 폭염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에어컨이 늘어나면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더 많은 발전소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전형적인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저자들은 “기후 재난이 우리의 뇌, 감정, 행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결코 기후변화를 미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 책의 원제이기도 한 ‘자연의 무게’를 느끼고 지구에 온전히 공감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지구와 그리고 서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정하고 환영하는 것은 기후위기에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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