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재곤 (4) 눈 뜨면 일 일 일… 뛰고 또 뛰었던 나의 십대

장창일 2024. 11. 1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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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이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에서의 삶이 힘들어 어린 동생들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게 후회됐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안타까웠다.

나의 성실함을 알던 형님이 일을 준 것이었다.

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도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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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서 구박당하는 동생들 소식에 절망
소년 가장으로 반복되는 고된 일상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돌고 돌아 또 ‘닭’
20대 시절 김재곤(앞줄 오른쪽) 가마치통닭 대표가 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생들이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알고 보니 고향 큰댁으로 간 동생들이 큰어머니 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이 힘들어 어린 동생들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게 후회됐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안타까웠다. 동생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마음이 무너졌다.

지금처럼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소통할 수도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외갓집에서 알게 됐고 동생들을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큰집에서 반대하면서 갈등도 벌어졌다. 물론 동생들을 서럽게 한 큰댁에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동생들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지만 당장 내가 살아야 했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셨다면 사랑받으며 학교에 다녔을 테지만 현실은 남대문시장 닭 가게였다.

3년쯤 일했을 때였다. 아침에 배달을 가려는데 가게 사장인 사촌 형이 형수와 말싸움을 하다 느닷없이 내게 주먹질을 했다. 애먼 내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흐르는 코피를 허겁지겁 막으면서 애써 참고 있던 분노와 서러움이 폭발했다. 동생들 얼굴이 떠오르니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더 이상 사촌 형 밑에서 있을 수 없었다.

가게를 떠난다는 건 잠잘 곳도 버리는 것과 같았다. 명륜동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남영동 자동차학원에서 정비 기술도 배웠다.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지만 결국 자격증은 따지 못했다. 겨우겨우 살아가던 어느 날 보문동에서 닭을 팔던 또 다른 사촌 형에게 연락이 왔다. 나의 성실함을 알던 형님이 일을 준 것이었다.

돌고 돌아 또다시 닭이었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닭을 잡아 식품화하는 일에 관한 법규인 도계법이 없었다. 산 닭을 유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새 일터에선 새벽 4시부터 오전 7~8시까지 산 닭을 잡았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 내내 시장 구석구석으로 수금을 다녔다. 이틀마다 전국 각지로 닭도 사러가야 했다. 그렇게 2년간 일했다.

지금 다시 하라 하면 엄두도 못 낼 고된 일이었다. 편히 잠을 자는 것도, 배불리 먹는 것도 사치였다. 숨 쉬고 살기 위해 최소한 자고 먹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가게에 앉아 닭을 잡고 손질할 때는 그나마 덜했는데 배달하러 다니면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무너졌다.

부모님이 떠나시던 날은 왜 그리 이른 추위가 찾아왔을까. 왜 부모님은 그날 연통을 확인하지 않고 연탄에 불을 붙였을까.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깨어날 순 없었을까. 후회는 후회를 낳고 그때마다 아쉬움은 커졌다. 너무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된 현실이 억울했다. 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도 한심했다.

물론 한탄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눈 뜨면 일해야 했고 늦은 밤 일과를 마치며 바로 쓰러져야 했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1종 운전면허증이 필요해졌다. 면허증 때문에 큰 위기가 올 것도 모르고 그 길을 향해 다가갔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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