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신정부 눈에 띄지 않게… 통상마찰 소지 최대한 줄여라”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앞두고 ‘로 프로파일’(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게) 전략이 한국의 향후 통상 노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우선순위로 꼽은 중국 멕시코 유럽연합(EU) 등을 ‘각개격파’하는 사이 통상 마찰의 소지를 최소화한 채로 대미 소통 기반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시절인 2019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했던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지난 7일 국민일보에 “현재 미국의 (통상 과제상) 우선순위에서는 중국과 멕시코, 그리고 EU가 한국보다 앞서 있다”면서 “당장은 한국이 우선순위가 아닌 만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통상 현안을 잘 관리하면서 ‘로 프로파일’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신정부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할 지역으로는 북중미와 중국이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유세에서 “취임하면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의 재협상 조항을 발동하겠다”고 공언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올해 1~3분기 미국으로부터 각각 2위(1249억 달러) 9위(448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멕시코를 겨냥한 압박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의 관세 장벽을 우회해 멕시코에 생산 설비를 마련해 무관세 혜택을 누리는데, 앞으로 멕시코에서 생산한 중국 차량에도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멕시코산 제품에 일괄 2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으름장’도 내놨다.
올해 1~3분기 미국의 최대 무역 적자국(2165억 달러)이자 지난 트럼프 1기 때 무역 전쟁을 벌였던 중국에는 이미 트럼프 당선인이 고강도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전 세계를 상대로 계획한 10~20% 수준의 보편관세를 한참 뛰어넘는 6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취지다. 이외에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미국의 주요 적자국이 속한 EU도 트럼프 1기 때 철강 알루미늄을 둘러싼 통상 갈등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하는 분위기다.
한국도 미국의 주요 적자국이다. 한국은 올해 3분기까지 미국과의 교역에서 502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면서 적자국 순위 7위에 올랐다. 다만 뚜렷한 통상 현안이 부각되지 않아 우선적인 ‘공격 대상’에서는 빠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안보실장은 “트럼프의 발언들을 점검해본 결과 한국과의 무역을 문제 삼는 발언은 거의 없었다”면서 “선제적으로 현안을 만들지 않는다면 트럼프 시기에 한국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로 프로파일’을 유지하면서도 주도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은 최소화하되 ‘대미 아웃리치’(적극적 접촉) 활동은 강화해 유사시 대응 여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주목을 피하겠다고 넋을 놓고 있어서는 곤란하고, 트럼프의 정책을 움직이는 미국의 정치·경제 메커니즘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정책 변화와 입법 움직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산·관·학 공조 체계를 갖추고, 미국의 공급망 구축에서 필수 파트너로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경쟁 당국이 추진하는 플랫폼 독과점 규제가 미국과의 통상 마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특정 요건을 만족하는 대형 플랫폼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사후 추정해 제재 속도를 높이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가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업 보호’를 앞세워 한국에 통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자신들도 빅테크를 규제했기 때문에 해외의 미국 빅테크 규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했지만 트럼프 신정부에서는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해당 규제가 한국에서 미국 플랫폼을 규율하는 반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플랫폼에 시장 진입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도 미국을 자극하는 요소로 꼽힌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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