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금요일의 얼굴

2024. 11. 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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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본 딸에게 하고 싶은 말"큰 고비 혼자 넘겨 기특하다"그렇게 우리 삶은 이어져간다치매를 앓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감정을 담아내는 표정이 사라져서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아버지다운' 얼굴이 그립기만 하다.

오십을 바라보며 생긴 미간의 주름은 내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젖먹이 아기가 온 힘을 다해 젖을 빨 듯 얼굴에 힘을 주고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왔다.

결국 아이도 그 얼굴 표정을 물려받아 살아가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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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수능 본 딸에게 하고 싶은 말
“큰 고비 혼자 넘겨 기특하다”
그렇게 우리 삶은 이어져간다

치매를 앓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감정을 담아내는 표정이 사라져서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아버지다운’ 얼굴이 그립기만 하다. 그래도 미간 사이 깊이 파인 주름만은 그가 우리를 위해 ‘아버지답게’ 살아낸 시간을 소리 없이 증언한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주름에 시선을 멈추곤 한다. 몇 년 전부터 신경이 쓰이는 내 미간 주름과 모양이 똑같기 때문이다. 얼굴 생김새나, 손과 발 모양, 성질머리와 같이 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 닮은 것은 그리 신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름은 후천적인 삶의 경험들이 축적된 결과이지 않던가! 물론 인간이 모방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말을 배우기도 전에 그가 웃고 울며 화내고 달래는 표정을 마주하며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오십을 바라보며 생긴 미간의 주름은 내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젖먹이 아기가 온 힘을 다해 젖을 빨 듯 얼굴에 힘을 주고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 부양해야 할 가족을 위해서라면 성실함으로 고단함을 꿋꿋이 견뎌냈던 아버지의 표정마저 물려받은 것이다.

내게도 딸아이가 하나 있다. 아이를 키우며 얼마나 삶이 다채로웠는지, 아니 내 표정이 얼마나 다채로워졌는지 모른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신생아 여드름이 온 얼굴을 뒤덮었을 때 흉터가 남게 될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처음 뒤집기를 하던 날에는 세상에 이보다 경이로운 일이 없어 보였다. 네 살 무렵 아이가 색연필로 젖소를 그렸을 때 느꼈던 놀라움으로 싸이월드를 도배했고, 새롭게 옮긴 유치원에서 겉돌 때는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이 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때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중학교에 올라간 뒤 친구들로부터 당한 은근한 따돌림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내가 대신 당해 줄 수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지난해 여름에는 심한 장염으로 일주일을 입원하며 살이 쏙 빠진 아이의 얼굴에 마음이 얼마나 짠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내일 수능 시험을 본다. 이 글이 공개되는 금요일 아침에 나는 어떤 얼굴 표정으로 아이를 마주하게 될까? 아마도 금요일의 내 얼굴은 막 태어난 오리에게 각인된다는 어미의 형체처럼 이제 성인으로 세상에 첫발을 뗄 아이의 마음에 평생 각인될지 모른다. 일 년 내내 그리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전전긍긍하던 아이가 기적처럼 좋은 성적을 받게 된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나! 하지만 혹시나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받게 되지 못한다면 나는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지난밤 독서실에서 혼자 치른 모의고사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해 풀이 죽어 집에 걸어오는 아이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는 학벌이 네 인생을 좌우하게 키우지 않았다고 생각해”라고 다독였지만, 정작 약해지고 두려운 것은 내 자신이었는데 어떻게 나는 금요일 아침을 맞이할까!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는 자녀란 내가 쓴 시나 만든 물건과 같은 ‘나의 작품이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완전히 ‘낯선 타인’과 같다고 했다. 자녀의 삶은 좋든 나쁘든 결코 부모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의 두려움은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아이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 혼자 겪어내야만 하는 자기 삶의 몫이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 점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새기니, 11월 14일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을 견뎌낸 아이에게 금요일 아침 내가 지어줄 표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 한 대로 삶의 제법 큰 고비 하나를 혼자 넘어선 아이에게 기특하다고 격려를 해주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니 그렇게 지금부터 몇 번이고 다짐하며 연습한다. 결국 아이도 그 얼굴 표정을 물려받아 살아가게 될 것이니.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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