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대통령 공천개입 어쩌다 범죄됐나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 경남 창원의창 보궐선거의 공천에 개입했는지를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윤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김영선 전 의원을 후보로 민 정황이 뚜렷하다. 이를 근거로 야권에선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드러났으니 탄핵감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대통령이 공천에 관여하는 게 과연 처벌할 일인가? 필자는 공천 개입과 선거 개입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엄정중립을 취해야 할 대통령실이 편파적으로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후보를 선출하는 절차인 공천은 엄밀히 따지면 선거가 시작되기 이전 단계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당적을 보유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정당 활동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당의 당원으로서 대통령이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어떤 사람이 후보가 되면 좋겠다고 의사 표시를 하는 게 그리 잘못된 일일까. 어차피 공천장은 당 대표가 주는 건데 말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곧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천 개입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박이 나올 것이다. 맞다. 이미 대통령이 공천 개입으로 처벌을 받은 선례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의 견해는 아마 소수 의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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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엔 대통령 공천개입 당연한 일
윤석열 지검장, 공천을 사법이슈로
과도한 사법화가 정치를 황폐하게
」
그럼에도 2018년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공천 개입을 광의의 선거 개입으로 의율해 박 전 대통령을 공직선거법으로 기소한 건 정치 현실을 도외시한 작위적 기소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혐의는 뇌물수수였지만, 만에 하나 뇌물수수 혐의가 무죄로 판결 날 경우에 대비해 검찰이 보험용으로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엮은 것 아닐까.
그러나 대통령의 공천 개입은 선거 개입이라기보다 당무 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실제로 과거엔 대통령이 여당 공천에 개입하는 건 당연한 일로 간주했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임명하던 시절인 김영삼ㆍ김대중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당정 분리가 시작된 노무현 정권 이후에도 모든 대통령이 공천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했던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박근혜 정권 시절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는 게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공천 개입=선거법 위반’이란 도식은 윤석열 지검장(어쩌면 한동훈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의 발명품에 가깝다. ‘경제적 공동체’ 못지않게 창조적인 발상이었다. 결국 선거법 위반 기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을 추가했으니 윤석열 검사의 발명품은 제대로 작동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 윤 대통령은 본인 발명의 부메랑을 맞는 신세가 됐으니 소회가 어떨지 궁금하다.
대통령 당무 개입이 당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정치적으로 지면 된다. 가령 박 전 대통령은 무리한 ‘진박 공천’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고 20대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정권의 몰락이 시작됐다. 사법적 처벌 이전에 정치적 처벌을 받은 셈이다. 윤 대통령이 2022년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대표를 축출한 것도 대표적인 당무 개입 사례다. 그 결과 이 대표를 지지하던 20ㆍ30대 상당수가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고 이는 22대 총선 여당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부적절한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정치적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황폐해진 것은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 때문이다. 명확한 법규는 없어도 여야가 대화와 관례로 처리하던 회색지대가 급속히 사라지고 뭐든지 법원으로 끌고 가는 풍토가 조성됐다. 대통령 공천 개입도 원래는 정치의 영역에서 논할 사안이었는데 어느덧 사법적 이슈가 돼 버렸다. 딱한 현실이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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