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52시간제, 국가대표 훈련 제한하는 꼴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일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7일 일합니다. 일하지 않을 때는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세계 1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이 지난 4월 대담에 나와 한 말이다. 그는 당시 농담조로 직원을 해고하기보다는‘고문(torture)’을 해 위대하게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블룸버그에서 엔비디아를 다룬 기사가 나왔는데 회사 분위기를 '압력솥(pressure cooker)'에 비유했다. 주 7일 근무에 새벽 2시까지 일하는 것도 흔하다고 한다. 그만큼 근무 강도가 세지만 직원들은 큰 보상을 받는다.
젠슨 황의 리더십을 대놓고 칭찬하는 사람이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도 일 중독자다. 그는 지난 2018년 X에 “일하기 편한 곳은 많지만, 주 40시간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찬반을 떠나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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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대항전이 된 반도체 경쟁
엔비디아는 새벽 2시에도 근무
특별법으로 근무 제한 풀어야
」
지난 11일 여당이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거리다. 과거에도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12시간 연장 근로가 가능했는데 휴일 근무가 빠져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휴일 근무까지 포함해 주 52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했다. 큰 변화였고 의미도 있다.
다만 주 52시간이란 용어가 오해를 불러온 점도 있다.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는 것이지 52시간 일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정규직 근로자의 월 근로 시간은 174.5시간이었다. 월평균 21.2일을 근무했으니 하루 평균 8.23시간(8시간 14분) 일한 셈이다. 관련 통계가 나온 2007년 193.2시간과 비교하면 월 19시간 정도 감소했다. 아직도 법을 지키지 않은 기업도 있지만, 대기업에선 퇴근 시간 ‘땡’ 하면 바로 나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게다가 적지 않은 기업은 고정 오버타임(OT)을 통해 미리 정한 연장 근로 수당을 지급한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연장 근무를 하든, 안 하든 대략 1주에 4시간 정도 수당을 준다. 주 40시간을 일하나 44시간을 하나 급여가 같다. 이런 상황에선 40시간 넘게 일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 주 40시간 임금만 주고, 연장 근로한 직원에게만 수당을 주면 될 것 아닌가. 대한상의 조사 등을 보면 기업은 커피 마시고 SNS 하는 시간이 근로시간인지 따지는 게 소모적 갈등만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금을 깎으면 직원들의 불만이 생기고, 혹여 연장 근무를 잘못시키면 근로기준법을 어겨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주 40시간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오해와 불신도 낳았다. 회사는 연장 근로 수당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직원 입장에선 고정 OT 수당을 교통비 같은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러니 일 더 하게 되면 ‘공짜 야근’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지금도 최대 주 64시간 근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도 받아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다는 뜻이다. 일부에선 주 52시간제에서도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은 잘 나가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몇 년 뒤에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나. 경쟁하는 외국 기업은 그런 제한이 없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 전략 산업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이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국가의 운명을 건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야당과 여당에서 나온 말이다.
반도체 기업과 종사자는 국가대표급이라는 얘기다. 올림픽이 다가오면 선수와 감독이 상의해서 훈련 방식과 전략을 짜면 된다. 그때마다 훈련 제한 시간 그어 놓고, 넘을 것 같을 때 선수촌장 허락받으라고 하면 훈련이 제대로 되겠나. 물론 연습 시간이 많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습량이 부족하면 메달 딸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여당 법안을 보면 연장 근로 예외는 2035년까지 유효하다는 일몰 조항이 있다. 반도체 종사자로 신상품 및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소득 기준과 업무수행 방식을 고려하게 돼 있다. 모두 더 일하자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1938년 주 40시간 제도를 도입하면서 화이트칼라 면제 조항을 뒀다. 일본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한국만 경직된 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이젠 기업이 근로자와 합의하면 일정 수준의 연장 근무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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