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도박장 미끼된 K콘텐트

2024. 11. 1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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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한강 이전에도 K콘텐트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이미 뜨거웠다.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 같은 굵직한 콘텐트만이 아니라 한국식 웹툰은 물론 국산 드라마들도 전통적인 한류 국가 바깥에서 마니아층을 만들며 인기를 얻어서다. 그렇지만 관심도의 증가에 비해 문화 분야에서 가시화되는 매출은 적으니 일시적 거품이 아니냐는 우려도 꾸준한데,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이미 한국 콘텐트들은 각종 불법 콘텐트 공유 사이트들을 통해 국내는 물론 잠재적 해외시장에도 무료로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피해가 연간 27조원 수준이니, 매출이 더디 늘 수밖에 없다.

신재민 기자

불법 공유 사이트를 근절하자는 뻔한 주장에 앞서,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런 불법 사이트들은 대체 어떻게 막대한 수의 이용자가 안정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수준의 서버를 무료로 유지하느냐는 점이다. 비밀은 배너광고다. 광고료를 받나 싶겠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한세대 송봉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각종 불법 사이트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핵심적 요소는 다른 불법 사이트로 연결되는 배너광고다. 음란물 사이트에서 배너광고를 누르면 다른 불법 사이트, 예컨대 불법 공유 사이트로 연결되는 식인데, 그런 배너광고들이 최종적으로 이용자를 부려놓는 곳은 다름 아닌 불법 도박 사이트다. 다른 사이트로 이용자를 유출하는 배너 광고가 일절 존재하지 않고, 오직 도박에만 집중하게 하게끔 하는 불법 사이트들의 진정한 종점이다.

생각해보면 도박 사이트들의 이런 전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 기업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결합해서 제공한다거나, 노인들에게 고가의 건강식품을 파는 일을 업으로 삼는 소위 ‘약장수’들이 사은품과 공연을 제공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치 아닌가. 본인들이 주력으로 파는 상품이 잠재적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수단일 뿐이란 얘기다. 특히나 도박 사이트는 최종 상품이 애초 불법이라, 불법 콘텐트 무료 제공 같은 극단적 판촉이 아니면 유인할 수단도 마뜩잖다. 그러니 남이 애써 만든 콘텐트를 불법 공유하는 걸 막으려면 도박 사이트라는 뿌리를 뽑아내야만 한다. 매번 바뀌는 주소만 차단할 게 아니란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불법 사이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온라인 도박 시장에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이 지난 11일에 발표한 사이버도박 특별단속 결과를 보면, 최근 1년여간 적발된 도박행위자 8492명 중 55%가 청소년이었다. 불법 공유 사이트들을 전전하던 학생들이 도박에 빠지는 안타까운 경로다. 그런데도 제도 변화는 아직 굼뜨다. 우리 문화산업은 물론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라도 불법 사이트의 ‘돈줄’을 막는 실시간 계좌 차단 같은 적극적 조치가 도입되길 바란다.

박한슬 약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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