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쟁력 악화시키는 법" 상법개정안 가속화에 재계 우려

박해리 2024. 11. 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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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반도체특별법, 주식시장 개선방안 등 민생 공통현안 논의를 위한 회동을 마친뒤 취재진에게 회동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회사의 경영을 위축시키고 행동주의 펀드 등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경영권 공격 세력에 악용될 수 있다며 “현장에서 시급한 법부터 속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14일 의원총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현재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총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개정안에 담겨 있다. 거대 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만큼 단독으로 상법 개정을 밀어 붙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경제 8개 단체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데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송 리스크에 따른 이사의 의사결정 지연은 기업의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고, 투기 자본에 의한 경영권 공격 확대로 기업 성장을 저해할 거라는 설명이다. 이어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시장 저평가)를 심화시켜 투자자에 피해를 끼치고 우리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나 건의서를 전달받고 있다. 뉴스1

이날 한경협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 150개를 대상으로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도입’ 시 영향을 분석해보니 30대 상장기업 중 8곳의 이사회가 외국기관 투자자연합에 넘어갈 거란 결과가 나왔다고도 주장했다. 한경협은 “과거 SK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 사태처럼, 제2 소버린 사태가 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연일 여의도를 향해 우려 목소리를 전달하지만, 여당은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당초 21대 국회에서 무산됐던 상법개정안 논의를 재점화 시킨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6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상법을 고쳐야 한다”며 힘을 보탰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야당과 소통할 기회가 있다면 자본시장법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M&A) 시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논의할 수 있지 않겠냐”며 상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밀고 있다. 정부도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내에서 법무부가 일찌감치 상법 개정에 반대해왔고 재계의 우려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곧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시 급한 반도체법은 언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접수하고 있다. 뉴스1
상법개정안 논의가 진전되는 가운데 반도체특별법 등 정작 산업계가 기다리는 법안들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연구개발(R&D) 분야에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적용하고 직접 보조금 지급 등 지원 방안을 담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을 당론 발의했다. 이 법안은 경쟁국들의 보조금에 대응해 기반 시설 조성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혁신성장, 공급망 안정화 등을 위해 보조금 등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여당은 “이번 정기회에 통과되게끔 신속 안건으로 지정받고자 (야당과) 협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예외 적용’과 보조금 직접 지급 등에 부정적인 상황이다.

반도체법 외에도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법안과 다음 달 말 일몰 예정인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 및 R&D 투자세액 공제 3년 연장 법안에 대한 논의도 더딘 상황이다. 경제단체들은 “우리 경제는 대외적으로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갈등 심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신성장 동력의 부재와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 위축 등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며 “지금은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이지 기업의 성장 의지를 꺽을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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