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B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남자 보이콧'이 뭐길래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미국 언론도 집중 조명한 한국의 '남자 보이콧'이 의미하는 것

[이슬기 기자]

▲ 미국 nbc news <'4B' movement picks up steam in U.S. after election> 보도 영상 중 일부. bihno는 bihon(비혼)의 오타로 보인다. ⓒ nbc 유튜브

'남자 보이콧'이 전면 대두되고 있다. 트럼프 시대 재개막과 함께 한국의 '4B'(비연애·비성관계·비결혼·비출산을 추구하는 운동)가 미국으로 갔다.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논의에 학생들이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거칠게 말하면 둘 다 구조적 성차별 속에서 남성으로부터 침해되지 않는 여성만의 '안전 공간'을 구축하거나(4B) 지켜야 한다(공학 전환)는 '남자 보이콧'의 일환이다.

재개막한 트럼프 시대, 미국으로 수출된 '4B'

4B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등을 계기로 2010년대 후반 한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여성들은 여성혐오적 행보를 서슴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플로리다와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열린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는 국민 투표가 부결된 것에 대한 대응으로 4B에 나섰다.

"우리가 입법과 낙태권 측면에서 그들이 하는 일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 해야 한다"며 "우리 삶에서 남성의 영향력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워싱턴 D.C에 거주하는 25세 여성 제이다 메브스, <뉴욕타임스>)하겠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남성과의 연애와 성관계와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되던 삶에서 '4B'의 등장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양태를 보여줬다. 4B는 남성의 시선을 상정하고 인정 투쟁하던 지난날의 피로감, 자기검열, 육체적·정신적 코르셋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을 남성의 성 노리개나 출산의 도구, 돌봄 전담자의 위치에 놓던 여성혐오적 사회에 대한 항거의 표현이다. 매일 1명 이상의 여성이 교제하던 남성의 손에 죽거나 죽을 위험에 놓인 현실을 감안한 안전 확보의 일환이기도 하다.

▲ 2016년 5월 22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 장소를 바라보는 한 시민의 모습. ⓒ 김예지

이렇듯 4B는 삶의 한 양태다. 그러나 당위는 아니다. 남성과 연애하고 성관계를 하며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도 여성의 욕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4B'가 남성과 성애적으로 연루되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연 것은 분명하다. 1988년생인 나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성과 '엮이는 삶'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와 '4B'라는 한국의 현실 여성들을 마주한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금 나에게 4B는 '상태'다.

페미니즘은 여성들 욕망의 선택지를 넓히는 방식으로 구현돼야 한다. 남성과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출산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두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 가능한 문제일 수 있도록. '탈코르셋'이 페미니스트의 유일한 증거가 아니듯, 4B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온 '4B'를 두고 '패배 전략'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칼럼에는 동의할 수 없다. 4B가 아닌 여성을 남성 권력에 일조하는 부역자로 매도하는 행태에도 동의할 수 없다. '4B'라는 이름의 '남성 보이콧'을 두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배제를 낳는 남성들의 '펜스룰'과 단순 비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4B는 그저 또 하나의 페미니스트다.

한편 '공학 전환'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던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서울 종암경찰서의 경찰이 '훈육' 차원에서 했다는 발언이야말로 4B의 당위가 된다. 그 남성 경찰은 총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야구 배트와 소화기로 닫힌 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에게 "나중에 애도 낳아야 하고 육아도 해야 하는데 이런 불법행위는…"이라고 했다.

이후 경찰 측은 "성차별적 발언이 아니다"라며 "우리도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아이도 생기고 육아도 할 거니 나이가 어린 학생들에게 훈육 차원의 발언을 한 것"(<서울신문>
'동덕여대 공학 반대' 학생에게 "애도 낳아야지"라는 경찰…"어린 학생 '불법 행위' 훈육", 2024/11/12)이라며 되레 억울해했다. 되묻는다. 반대로 남성 대학생들에게는 이런 '훈육'을 했겠는가. 긴박한 집회의 와중에 인생에 있을지도 모를 '출산', '육아'를 경유한 꾸지람을 듣는 인구 집단은 어린 여성밖에 없으리라.

학생이 배제된 채 진행된 '공학 전환' 논의

동덕여대는 단과대 차원에서 '학교 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학 전환을 논의했고, 공식 회의 안건으로는 상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학생들에 고지되지 않았고, 학교 측은 총학생회의 면담 요청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소통에 불성실했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4년제 여대는 광주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7곳이다. 앞서 상명여대, 성심여대, 효성여대가 공학으로 전환했거나 다른 대학과 통합해 공학이 됐다. '공학 전환'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반대 주장에 성신여대, 한양여대의 총학생회도 연대의 목소리를 보탰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나란은 지난 7일 입장문에서 "동덕여자대학교를 구성하는 것은 동덕'여자'대학교의 '여성'"이라며 "동덕여대의 근간인 여성을 위협하는 공학 전환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시위 인증샷에 올라오는 대표 해시태그는 '#소멸할지언정_개방하지않는다'이다.

▲ 지난 13일 남녀공학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시위중인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교정의 모습. ⓒ 권우성

주요 구성원인 학생들을 배제하는 비민주적인 방식의 동덕여대 공학 전환에 반대한다. 이는 '여성 교육'이라는 학교의 취지에 동참해 입학을 결정한 학생들과, 동덕여대 입학을 목표로 준비 중인 수험생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학생들에게 '폭력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외부 단체와 연계되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이라는 말로 집회에 나선 학생들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학교 측 발언도 문제적이다.

'여성의 교육권 신장'을 위해 태동한 여대라는 공간의 취지는 아직 유효하다. 여대의 존재 의의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만 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학 대학 다수에서 백래시에 직면해 '페미니즘', '여성학'이라는 이름의 과목들이 폐강되는 가운데 그나마 여대에서 명맥을 이어오는 현실을 놓고 보면 그렇다. 여성이 여성만으로 꾸려가는 자기 주도적 공간의 의의와 '4B'와 비슷하게 남자 없는 삶도 상상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의의도 크다.

그렇다고 여대가 '완전무결한 안전 공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 사이에도 다툼은 나타나고, 차별도 발생하며, 성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과 함께 있는 공간 대비 젠더 기반 폭력이나 성적 차별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적은 것은 맞다. 이러한 환경이 불러일으키는 기대 심리는 '백래시'가 직접적인 폭력으로 발현되리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상시적일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여대에는 적어도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는데 동의하는 성원들이 모여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보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지난여름, 여대에서 소규모 강의를 할 때 내가 느낀 감각이 그랬다. 일간지와 공중파 라디오 등에서 주로 발화를 하던 나는 항상 내 글과 말의 수용자가 어떤 이들일지 잘 가늠이 안 갔다. 때문에 가급적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발화를 하려고 애썼다. 페미니즘에 도통 관심 없는 이들도 들을 거라는 전제하에.

그러나 여대에서 강의할 때는 달랐다. 페미니즘적 대전제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는 나만의 가설 하에 강의를 했고, 그러한 감각 덕에 나는 다른 자리에서보다 확연히 더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성차별을 '젠더갈등'이라며 피곤해하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일도,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가능했다. 이 모든 일들은 바로 내가 그 대학의 구성원들이 남긴 수많은 여성학 논문들을 레퍼런스 삼아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수강생들 중 상당수는 내 전제에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사상적으로 안전하다'는 감각 덕에, 나는 그 공간에서 보다 용감할 수 있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지 않아도 됐고, 그로 인해 남은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안전 공간'으로서의 여대란 바로 이런 지점이다. 생존과 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완벽한 안전을 보장받는 요새나 방공호가 아니라, 생명력이 약동하는 공간. 그리하여 여성대학이 사회에 내놓은 수많은 페미니즘적 레퍼런스, 거리 집회를 포함한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힘이 여기서 나왔다고 본다. 지금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과 다른 여대 학생들, 이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의 행보는 일련의 전제에 동의한 이들의 연대다.

4B와 여대라는 남성 보이콧, 선택지의 문제

결국 '4B'도 여대도 선택지의 문제다. 남성과의 연애·결혼·출산이 여성의 인생에 전부인 줄만 알던 세계에서 '4B' 또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여성의 대학 진학 과정에서 여대 또한 하나의 선택지로 존속할 수 있음을 아는 것. 모쪼록 여성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세상이야말로,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는 세상이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나타나는 운동으로서의 4B를 '올려 치려다' 4B 아닌 페미니스트를 '후려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안전 공간'에 대한 희구를 또 다른 약자인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혐오로 전이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또다른 혐오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에 가하는 '한가한 소리'라는 힐난도 그렇다. 누구도 한가하지 않다. "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 얘기"라는 비아냥을 늘 들었던 게 페미니즘의 본령이지만, 언제고 '조개 줍는 얘기'는 한가한 얘기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생존에 관한 얘기였다.

페미니스트들이 자기 본위대로 행복하길 빈다. 또 내가 사랑한 여대가 존속하기를.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학생들을, 굳건히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