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정부 '순국선열의 날' 또 충돌...보훈부 "별도기념식 대관 불허"

이유정 2024. 11. 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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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가 배포한 '독립유공자 선열 합동 추모식' 초청장. ″올해부터는 (정부 주관)순국선열의 날을 대신하여 진행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사진 국가보훈부

8·15 광복절 기념식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정부와 광복회가 이번엔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을 앞두고 또다시 충돌했다. 광복회는 “정부 기념식과 별도의 행사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겠다”고 밝혔고, 정부는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며 광복회의 현충원 사용을 불허했다. 광복회는 정부의 결정에도 서울현충원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여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14일 국가보훈부와 광복회에 따르면 광복회는 지난 달 29일 각 지부에 “오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 앞서 15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독립유공자 선열 합동추모식’을 거행한다”는 공문을 돌렸다. 이는 1997년 이후 매년 정부 기념식으로 거행해 온 순국선열의 날 기념 행사를 광복회가 별도로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실제로 광복회가 배포한 초청장에도 “올해부터는 (정부 주관)순국선열의 날을 대신하여 진행합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광복회는 “기존 정부 기념식인 ‘순국선열의 날’을 법률 개정을 통해 ‘독립유공자 선열 합동 추모식’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겠다”면서 “생존 애국지사가 거의 없는 상황(국내 5명)에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구분하지 않고 독립 유공자로 함께 추모하고 기려야 한다는 게 광복회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순국선열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지사들을 일컫는다. 생존 독립운동가인 애국지사와는 구분된다.

이에 대해 보훈부는 “광복회 주관 행사는 기존 정부 기념일과 뜻을 달리하는 대체 행사”라면서 “(정부 시설인)서울현충원 현충관의 사용 승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 기념일을 대신해 광복회가 별도의 추모식을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별도 행사를 진행하면 언론 등이 ‘순국 선열의 날’ 행사를 오인할 수 있고 단체 간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순국 선열의 날’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규칙 등에서 정한 법정 기념일이다. 1939년 임시정부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희생한 독립 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1997년부터 매해 보훈부(2022년까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식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오는 17일 ‘제85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된다.

광복회는 14일 재차 보도자료를 통해 “광복회는 보훈부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순국선열·애국지사 추모식’을 15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예정대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훈부가 광복회의 내년도 예산을 삭감한 데 이어 여야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광복회의 독립 유공자 추모 행사를 불허하고 있다”면서다.

광복회는 앞서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도 정부 주관 기념식에 불참했다. 1965년 단체가 설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복회는 이후 별도의 광복절 행사를 열어 초유의 ‘두 쪽 광복절’ 사태가 벌어졌다.

이 무렵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둘러싸고 점화한 정부와 광복회 간 갈등은 건국절(1948년) 제정 논란의 이념 갈등으로 번졌다. 광복회는 김 관장이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라고 주장했고, 김 관장과 정부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후 순국 선열의 날까지 ‘두 쪽 행사’가 되는 모양새다.

다만 광복회는 17일 정부 기념식에 광복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것일 뿐 실무급 인사가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광복회의 강행 방침에 순국선열유족회 등 유관 단체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순국선열유족회는 긴급 성명서를 내고 "광복회가 매년 거행해온 순국선열의 날 명칭을 변경해 별도 개최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광복회가 순국선열 용어 지우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순국선열 유족회를 비롯한 여타 단체들은 광복회가 독립 운동 관련 행사를 모두 틀어 쥐겠다는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 독립 운동 관련 단체 가운데 정부 예산을 지원 받는 공법 단체는 광복회가 유일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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