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봉지·음료 빨대까지...친환경 시대 캐시카우로 떠오른 ‘썩는 플라스틱’

조성호 기자 2024. 11. 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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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에버켐텍 등 국내외 기업들, 새로운 먹거리로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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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에버켐텍 연구·개발(R&D) 캠퍼스에서 연구원(오른쪽)이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을 들어 투명도를 확인하고 있다. 왼쪽 뒤편의 연구원이 들여다보고 있는 유리 용기에는 플라스틱 수지가 액체화된 채 담겼다. /고운호 기자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에버켐텍 연구·개발(R&D) 캠퍼스 실험실. 새하얀 실험복 차림의 연구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1L들이 실험용 플라스크에 채워진 초록색, 상아색 액체를 보며 실험에 한창이었다.

친환경 시대의 새로운 캐시카우라는 ‘생분해 플라스틱’을 액체 형태로 녹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썩는 플라스틱이라고도 하는 생분해 플라스틱은 종전 플라스틱의 썩지 않는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개발한 플라스틱을 일컫는다. 환경 보호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 주요 소비재 기업이 이 분야 투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에버켐텍은 아예 생분해 플라스틱을 액체화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물에 녹아든 생분해 플라스틱을 골판지 같은 종이에 얇게 입혀주면 골판지 강도는 더 높아지고 방수력을 갖추면서도 일반 종이처럼 썩기도 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날 실험실 현장을 찾은 WEEKLY BIZ를 맞이한 이성민 에버켐텍 대표는 “물에 녹는 플라스틱을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며 “지금 (플라스크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게 분당 300회전 정도 되는데 온도나 속도 등을 달리하면서 액체화한 플라스틱을 종이에 얇게 바를 수 있는 최적 조건을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12일 경기도 화성시 에버켐텍 연구·개발(R&D) 캠퍼스에서 만난 이성민 에버켐택 대표이사는 "물에 잘 녹는 플라스틱을 개발하기 위해 온도나 속도 등 어떤 조건이 좋을지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새로운 먹거리’ 생분해 플라스틱에 눈독

생분해 플라스틱이 글로벌 화학·바이오 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생분해 플라스틱을 찾는 곳이 늘자, 이를 생산하는 기업들 매출 역시 쏠쏠해졌기 때문이다. 에버캠텍 측도 “올해 실질적인 사업을 시작한 생분해 플라스틱 관련 사업이 내년엔 매출 200억원까지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에버켐텍은 원래 TV 화면 같은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정전기 방지 물질을 주로 만들어 온 화학공업 회사였지만, 최근 생분해 플라스틱을 주력 먹거리로 추가했다. 이 회사가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액체화’ 기술 덕분이다. 이 대표는 2014년부터 회사의 신사업을 찾으려 연구하다가 식품 포장재에 바르면 산소 투과율을 낮춰 식품의 부패를 늦춰주는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냈다. 산소를 막아주는 특정 성분을 비닐 포장재에도 바를 수 있도록 액체화하는 기술을 구현해 낸 것이다. 회사는 이 기술 덕에 지난해 5월 세계포장기구(WPO)가 주최하는 월드스타 패키징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이 액체화에 실패한 성분을 녹이는 데 성공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생분해 플라스틱도 액체화하기로 한 것이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

생분해 플라스틱은 최근 갑자기 나온 제품은 아니다. 이미 50여 년 전부터 활발히 연구가 시작돼 소재에 따라 20여 년 상용화를 시작한 상품도 있다. 그러나 최근 시장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주요 소비재, 특히 식품 기업들이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포장재를 자사 제품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펩시코(PepsiCo)다. 펩시콜라로 유명한 이 회사는 프리토레이 같은 스낵도 만드는데 썩지 않는 포장지 재질 때문에 고심이 컸다. 특히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강바닥에 프리토레이 봉지가 잔뜩 널브러려 있는 모습은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고, 자사 포장재를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바꾸기로 했다.

중국에서도 2021년부터 특정 품목에 한해서는 아예 일회용 플라스틱을 못 쓰도록 규제하는 등 각국에서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한 규제도 새로 만드는 추세다. 중국이 일회용 대신 사용하는 생분해 비닐봉지 비용만 10조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래픽=김의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생산한 생분해 플라스틱만 113만6000t으로 추산된다. 생분해 여부와는 별개로 종전 석유·화학 기반이 아닌 자연 유래 성분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생산 규모 범위를 확대하면 그 양은 218만2000t에 이른다. 유럽바이오플라스틱협회에 따르면,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 규모는 2028년 460만5000t(바이오 플라스틱 전체는 743만2000t)으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니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도 느는 추세다. 독일의 바스프가 생분해 플라스틱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SKC나 LG화학, CJ제일제당 등이 참여하고 있다.

김영선 CJ제일제당 화이트바이오 사업운영 담당은 “미국 일부 주(州)에선 음식 쓰레기를 매립했을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막기 위해서 따로 퇴비화를 하거나 바이오 가스로 자원화를 하는 곳이 있는데, 이런 쓰레기를 수거하는 과정에서 생분해 플라스틱 봉투가 쓰인다”며 “미국은 특히 브랜드나 소비자 차원에서 생분해 플라스틱을 먼저 찾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농사나 양식업 등에서 쓰임새도 다양해져

생분해 플라스틱의 최대 장점은 역시 ‘썩는다’는 점이다. 소재마다 썩는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토양이나 해양에서 썩는 특성 때문에 농업이나 어업 현장에서 쓰기 좋다. 이 때문에 최근에 가장 널리 쓰이는 곳은 농업용 ‘멀칭 필름’이다. 밭에서 농작물을 덮어두는 데 쓰이는 이 비닐을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쓰면 농작물 알맹이만 쏙쏙 수확하고 비닐은 그냥 방치해도 된다. 알아서 퇴비로 변해 버리니 이전에 비닐을 일일이 걷어낸 뒤 산업 쓰레기로 버려야 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모종을 심을 때에도 모종 아래의 얇은 플라스틱 화분이 골칫거리였는데 이젠 썩는 플라스틱 화분을 이용해 모종을 통째로 심을 수 있게 됐다.

어업 현장에선 해상 양식장에 설치한 플라스틱 재질의 부표가 파도에 유실되는 일이 흔해 해상 오염 우려가 많았는데 썩는 플라스틱 덕분에 이런 걱정도 덜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미국 스타벅스는 종이 빨대 대신 윈컵이란 회사에서 만든 생분해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고 있으며, 네슬레도 생분해 플라스틱 제조사에 투자했다.

◇종전 플라스틱보다 비싼 가격은 흠

다만 생분해 플라스틱이 모든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여전히 종전 플라스틱보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게 PLA, PBAT라는 소재인데, 이들만 하더라도 기존 플라스틱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게다가 이 소재는 특정 환경(섭씨 60도 이상)에서만 생분해된다거나, 단일 소재로만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TPS나 PHA 등과 같은 소재다. TPS 중에서도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TPS는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의 강도를 유지하면서도 가격은 PLA·PBAT 등과 같은 소재의 60~70% 선이다. PHA는 가격은 더 비싸지만 분해성이 매우 뛰어난 게 특징이다. 업계 관계자는 “PHA와 TPS는 모두 한국 기업들이 잘하는 소재”라며 “PHA는 CJ가 TPS는 에버켐텍이 선도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만큼 친환경 시장이라는 사업성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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