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민 모두의 전태일, 그 이름 딴 병원 건립 도와주세요"

김병기 2024. 11. 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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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이철수 화백,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 판화전 열어

[김병기 기자]

 이철수 화백
ⓒ 김병기
"그의 존재가 심지였다면 영혼은 기름 같은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옷이 아니라 그 순수한 영혼에 불을 붙인 거라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영혼의 빛깔이 투명하고 순정했다는 거죠."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지난 6일부터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판화전을 열고 있는 이철수 화백의 말이다. 반세기 전인 1970년 11월,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22살의 젊은 몸을 태웠던 전태일에 대한 이 화백의 기억은 진보의 아이콘인 '열사'에 갇혀있진 않았다.

"자기 차비를 아껴서 봉제공장의 허기진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는 따뜻한 오빠 같은 사람."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을 '큰 그릇이야, 늘 나누기 위한 준비!'라고 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단다. 이 화백은 "풀빵은 참 작은 정성인데, 작지만 소중한 것을 온통 남에게 나눠주는 마음자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지금 우리 시대에 딱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작지만 큰 마음, 이게 바로 큰 그릇"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를 열며] '보통명사 전태일'과 함께하는 사회연대병원
 이철수 화백
ⓒ 김병기
 이철수 판화전 포스터
ⓒ 이철수
이 화백은 전태일의료센터 대표추진위원이기도 하다. 지난 12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그는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제목의 작품을 예로 들면서 이번 전시회에 선뜻 마음을 내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는 글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이런 좌우 구분은 피상적이기도 하고 폭력적이기도 하죠. 이렇게 선을 그어서 좌우 존재를 가르는 일은 참 부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한데요, 전태일을 어느 한쪽에서만 아름다운 청년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죠. 이참에 전태일을 우리 사회의 보통 명사처럼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그런 생각으로 전시를 결정했습니다. 누구나 전태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 화백이 전태일의 불꽃 같은 삶에서 오롯이 꺼내든 나눔과 연대의 정신, 이게 바로 오는 2027년에 완공될 전태일의료센터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녹색병원은 직업병을 인정받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보상금으로 세운 병원이다. 지금도 1500여 명의 건강 약자 노동자와 400여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노동자 병원이다. 단식 농성과 고공 농성 현장을 방문해 진료하는 일도 하고 있다. '사회연대병원'인 셈이다.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판화전 도록에서 "사회와 같이 아파하고, 아픈 사회를 치유하는 전태일병원이 되겠다"면서 "190여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병원 건립 비용 중 50억 원을 국민 모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며 이철수 판화전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은 모두 병원 건립에 쓰인다"는 사실을 언급한 뒤 고마움을 전했다(관련기사 : 모두가 꿈꾸던 병원,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들도 있습니다 https://omn.kr/2amzk).

[전시 작품] '그림으로 쓴 시' 200여 점... "마음의 고삐를 쥐어야"
 '우리들의 길'(이철수 판화)
ⓒ 이철수
 '길에서'(이철수 판화)
ⓒ 이철수
 '녹색 땀 흘리는 한 낮'(이철수 판화)
ⓒ 이철수
목판에 새긴 점과 획의 미학. 획으로 이어가지 않고 시작이자 끝인 묵언의 점으로 남긴 건 멈춰서서 응시하겠다는 뜻이다. 날카로운 칼날로 시작한 점이 여러 갈래로 뻗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한 획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건 깊은 사색의 길에 동행하자는 뜻이다. 시집의 책장처럼 여백이 충분한 건 타자의 상상력을 위한 공간을 남겨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나희덕 시인은 이런 이 화백의 작품에 대해 "간결하고 단아한 이미지와 화두처럼 꽂히는 문장이 조화를 이뤘다"면서 "그림으로 시를 쓴다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화백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내어준 작품은 병풍 세트를 포함해서 총 58점. 병풍에 들어있는 작품을 한 개씩 셈하면 총 200여 점에 달한다. 이 화백은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라서 많은 분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따뜻한 그림들을 가려서 뽑았기에 비교적 긴 시간대를 거쳐 만들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새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은 '전태일의 불꽃을 들여올려'라는 제목의 두 점이다. 비천상처럼 보이는 단순화 된 사람의 이미지에 불꽃 덩어리를 들어 올려서 바치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에 각각 2개의 글을 달아 올린 작품이다.

이 화백은 "기도를 하고 있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 사람의 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전태일의 불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라면서 "우리 시대가 전태일의 불꽃을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존재로 인식하지 말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따뜻하고 정 많은 불꽃 존재로 다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전태일 의료센터를 만드는 일에 조금씩이라도 마음과 물질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전태일의 불꽃을 들어올려 2'(이철수 판화)
ⓒ 이철수
 '용비어천가'(이철수 판화)
ⓒ 이철수
"정치인들이 와서 보았으면 좋겠다"는 작품도 있다. 제목은 '용비어천가'. 포효하는 용의 형상 양옆에 글을 새겼다. 이 화백은 "100여 편에 가까운 용비어천가의 본사에는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드러내려고 한 내용이 대부분인데, 마지막 결사를 보니 놀랍게도 상투적으로 임금을 드높이는 노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잊어서는 안 될 아주 준엄한 목소리가 담겨있어서 그걸 축약하고 윤문도 해서 제 판화의 화재(畫材)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전시된 모든 작품을 하나로 관통하는 맥이 있을까?

"땀 안 흘리고 잘 살려고 하는 태도는 설사 성공해도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고, 혼자만 잘 살아서는 재미도 없지만 그게 행복할 리도 없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시장통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참 쉽지 않은데, 스스로 마음의 고삐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고삐를 잘 쥐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죠."

[십시일반을 요청하며] "우리 사회의 그늘 한 조각을 함께 걷어냈으면..."
 '새는 온몸으로 난다2'(이철수 판화)
ⓒ 이철수
이날 전시회장 한편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자주 끊겼다. 작품을 산 시민들이 이 화백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기 때문이다.

황은성 씨는 "엊그제가 저희 아버님 49재였는데, 선생님의 불꽃 그림을 보고 아버님의 선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 앞에 서는 순간 아버님이 '너, 이거를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시는듯하여 그림을 샀다"고 말했다. 이에 이 화백은 "임자를 잘 만났다"고 화답했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외국인은 이 화백과 사진을 찍으면서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작품의 글귀를 통역으로 듣고 나서 눈물까지 흘렸다"라면서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화백은 "지난 1주일 동안 전국에서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데, 그래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장년층이 많다"라면서 "전태일의료센터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고 저는 단지 거드는 사람일 뿐인데, 여기 앉아서 제가 꽤 많은 인사를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겸연쩍어했다.
 이철수 화백
ⓒ 김병기
이 화백은 이어 "산재노동자들이 지금 의료 분야에서 겪는 소외 현상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라면서 "산재 노동자들과 조직화되지 않은 노동자들, 그러니까 여러 시스템 안에서 받을 수 있는 조력에서 좀 소외돼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전태일의료센터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나선 길에 힘을 보태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화백에 따르면 국민모금 목표액 50억 원 중 현재까지 15억 원 정도 모였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보통명사가 되어야 할 전태일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내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이곳에 나와서 앉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했다.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지고, 소외되는 사람 없고, 아픈 사람,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하자면서 서로 어깨를 걸어왔어요. 지금은 꽤 풍요로운 사회가 됐는데, 여전히 그늘이 진 구석이 많고, 그 그늘이 쉽게 걷힐 것 같지는 않다는 걱정도 많아요.

전태일의료센터는 작은 의료기관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데, 우리 사회의 그늘 한 조각을 걷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변화에 관한 기대 이전에, 이런 작은 변화는 우리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당신이 함께 나서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전태일 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2024 이철수 판화전
2024.11.6~2024.11.18 인사아트센터 제6전시장 주관․주최:전태일의료센터건립위원회 https://mokpan-exhibi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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