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아버지, 그의 사랑을 파헤치는 아들
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말>
[조영준 기자]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01.
어떤 단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를 너무 쉽게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집합적이고 긍정적일수록 더욱 그렇다. 실재와 현상이 해당 단어의 의미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거나 심리적으로 가까운 쪽이라면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때 발생한다. '가족'도 그런 종류의 낱말 가운데 하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의 뜻이 있다.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대개 한집에서 생활하거나 주기적인 연락이나 접촉이 이루어지는 집단, 구성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30년이 넘게 떨어져 살아온 아버지와 아들을 여전히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중 25년 가까이는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면. 역시, 어떤 단어는 그렇지 못한 존재를 너무 가까운 곳으로 옮겨다 놓는다.
연극배우 타카시(모리야마 미라이 분)는 아버지 토야마(후지 타츠야 분)와 30년이 넘게 떨어져 살았다. 오래전 부모의 이혼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극심한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연락을 받고 규슈로 향하게 된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아들의 자리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아버지의 거처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수상하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집안 곳곳에는 치매에 걸린 그가 어지럽게 흩어놓은 기억의 흔적들이 가득하고, 새어머니 나오미(하라 히데코 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뒤다.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영화 <위대한 부재>는 케이 치카우라 감독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아버지의 치매 발병으로 고향을 자주 방문하게 된 그는 그때부터 '부재'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힌다. 당시의 경험이 영화의 영감이 된 것이다. 극 중 치매에 걸린 아버지 토야마와 아들 타카시의 관계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으로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져야 했을 서사가 미스터리 장르의 탈을 쓰고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부자(父子) 관계와 치매로 인한 기억 상실의 소재, 그리고 한 사람의 실종은 그 뼈대가 된다.
형식적으로도 그렇다. 영화는 타카시가 아버지 토야마의 현실을 좇는 주요 내러티브 사이사이에 과거의 사실을 배치하며 마치 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는 듯한 구조를 하고 있다. 특히,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부자(父子)가 최근 몇 년 사이 만났던 두 번의 사건은 중요하다(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던 때의 기억과 아들 내외를 만나고 추모식에 참석하던 때의 기억이다). 극중 인물인 타카시에게는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잇는 장면이자, 관객에게는 내러티브의 공백을 채워주는 자리여서다.
03.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장르적 서스펜스는 특정 장면에서 발생한 내러티브의 공백을 다른 장면으로부터 채워야 하는 식으로 확보된다. 대표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치매에 걸린 토야마가 하는 말의 진위 여부와 나오미의 행방, 그리고 중·후반부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 오가타 토모코씨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모든 의문은 극의 진행에 따라 후반부에서 모두 해소된다. 하지만 문제가 제시되는 장면으로부터 극의 여백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관객에게는 일종의 불안처럼 느껴지며 극의 톤이 전달된다.
타카시가 아버지를 처음 면회하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치매로 인해 이미 기억의 혼란을 겪는 토야마는 아들에게 자신이 납치당한 것이고, 바이러스를 연구 중인 박사라고 마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설명한다. 심지어 사라진 아내 나오미에 대해서는 집을 드나들던 전기 기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잘못된 사실마저 전달한다. (극의 순서로는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나중에 알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런 기억 앞에서조차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그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온 일이 괴롭다며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다.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과거에 있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게 즐거울 리 없지요."
앞서 이야기했던 부자(父子)가 가진 두 번의 만남 중 하나는 어렵게 걸음을 옮긴 타카시의 것이다. 혈연으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남처럼 살아왔던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하기 위해, 자신도 이제 어느 정도의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찾아갔던 때다. 하지만 이때도 그는 사극의 한 인물을 연기했던 아들에게 과거의 인물은 대답할 수 없기에 자신의 식대로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정작 본인은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 새살림을 차린 주제에.
영화의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도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나온다. 어린 시절 아들에게 행사한 폭력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 이은, 자신을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지점이다. 치매에 걸린 인물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되기는 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 어떤 종류의 성정이 갖춰진 대상인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꼭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영화 곳곳에서 우리는 아버지 토야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가 가정 밖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타카시는 이런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보호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일편단심인 어리석은 청년이 옳았다는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 외치고 싶습니다."
이제 영화는 아버지 토야마의 것으로 온전히 넘어온다. 아들이 존재하기도 전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마음 하나는 치매의 한토(寒土) 위에서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감각이 된다. 순서대로라면 영화의 첫 장면 이전에 놓여야 했을 장면이 마지막으로 도치된 이유 역시 그래서다. 내러티브의 전개를 위한 디딤돌이 아닌 모든 사건을 닫는 문으로 여겨져야 할 필요성. 이 장면에서는 아주 오래전,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 하나 더 레이어처럼 쌓인다.
자신이 마치 진짜 어떤 사건의 용의자인 것처럼 여긴 토야마는 짐 정리를 하고 몸을 단정히 한 후에 집을 떠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련의 과정은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야 했던 것과 유사하다. 나오미에 대한 마음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사랑에 대한 결실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감정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진 채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그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단체로부터 납치된 박사로 스스로를 여기고 있지만, 이는 위장에 불과하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도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을 지독한 병에 걸린 뒤에 기억을 잃은 후에도 마음껏 꺼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해석인 걸까.
만약 그러하다면, 영화의 마지막에서 남자가 울부짖는 것처럼 그 마음이 평생을 지우지 못한 족쇄와도 같은 사랑이었다면. 나는 이제 아버지의 허리에 자신의 벨트를 내어주던 타카시의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사랑과 아버지의 행위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끝내 끊어낼 수 없었던 관계에 대한 증표 같은 것일 테니까.
내게는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부재'의 앞에 놓인 '위대한'이라는 단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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