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쓰인 경제 책을 읽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김성호 평론가]
오늘의 체제, 그것이 자본주의든 민주주의든, 법치주의며 다원주의든 간에 우리가 이룬 규범과 운용하는 제도는 과거 있었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이 숙지하고 대응키 어려울 만큼 많은 규범과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은 경제학자가 아니고서야 제도의 전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 배경을 충실히 다 이해하지는 못한 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 뿌리를 보는 것은 그 현상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오늘의 복잡한 경제제도 이면에 과거 비교적 단순했던 제도의 허점과 그에 대응해온 방식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그 시절 경제가 굴러갔던 모양과 그 흐름을 이해하다 보면 오늘의 경제체제 중심을 가로지르는 기초적이며 변치 않는 지식을 접할 수도 있는 일이다.
▲ 가격의 세기 책 표지 |
ⓒ 레디셋고 |
저자는 시어도어 E. 버튼과 G. C. 셀든이다. 버튼은 20세기 초 미국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수차례 지낸 정치가이자 금융 전문가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대중적 명성은 높지 않지만 미국 금융제도를 기획, 조정하는 업무를 맡았을 만큼 금융통이라 해도 좋겠다. 셀든은 당대 월스트리트에서 유명했던 분석가이자 저술가로 한국에도 그가 쓴 여러 권의 투자서가 출간된 인물인데, 책은 그를 <월스트리트 매거진> 편집장 직함으로 소개해두고 있다.
이들이 함께 한 책 <가격의 세기>는 20세기 초, 과거보다 한층 복잡해진 경제상황을 이해하기 위하여 지난 시대의 경제적 상황을 불러와 분석한 노력이다.
책 가운데엔 셀든이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에 수록된 자료, 대부분 18세기 전후 영국과 미국의 금리며 생산성, 화폐가치 등 여러 경제지표를 내보이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각 지표가 경제상황에 갖는 의미와 효과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독자가 그들이 처해 있는 경제상황을 이해하고 사업과 투자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 볼 수 있겠다.
책이 출간된 건 본래 1919년이다(책은 한국에는 2016년 소개됐다). 한국에서야 일제강점기 3.1운동이 일어난 때라 너무 먼 옛 일처럼 여길 수 있겠으나, 당시 세계 자본주의는 급성장을 거듭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팽창을 겪어내고 있었다.
특히 산업혁명의 과실인 기계화와 산업 전반에서 급속히 이루어져 생산성이 크게 고양되고 전 세계적인 무역이 역대 최고수준을 경신하고 있던 때다. 한편으로 이 시기 경제는 급속히 성장하다 크게 고꾸라지기도 수차례 반복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유례없는 전 세계적 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한 탓이었다. 특히 각국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전쟁은 축적된 잉여자본을 급속히 소모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생산성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경제규모가 축소되는 사례가 수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물가안정을 위해 금본위제를 실시하고 있던 각국이 1차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화폐를 마구 찍어낸 것은 당대 경제체제에 치명적 타격을 안겼다. 영국 파운드화를 중심으로 실제 보유한 금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금본위제가 사실상 그 원칙을 상실한 순간이었다. 급격히 쏟아진 각국의 화폐가 곳곳에서 실물경기와 제도가 맞지 않는 상황을 마주했고, 화폐의 신용도가 추락하고 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상황은 그렇게 악화일로를 걸었다. 당시 책이 출간되고 10년 뒤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안겼다는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일어나게 되니, 당대 경제의 상황을 과거를 파헤쳐 돌아보려는 노력이 어째서 있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가.
가격은 왜,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가
책은 모두 다섯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책 내 핵심이 되는 요소라 해도 좋을 가격에 대해 설명하고, 1790년부터 당대에 이르는 각종 경제지표를 살피며, 유럽에 비해 미국 물가가 갖는 의미를 돌아본다. 이어 이자수익률과 금리 변화의 원인과 의미를 살피고, 주식가격에 대해 살피는 구성이다.
이러한 물가하락의 주요 원인은 기계와 교통이 발전함에 따라 생산단가가 저렴해졌다는 점이다. 기계로 만든 신발은 손으로 만든 신발에 비해 적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므로 더 저렴하다. 트랙터, 수확기, 탈곡기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고 철로를 통해 시장으로 운반한 밀은 손으로 씨를 뿌리고 수확한 다음 거칠고 질척한 길을 따라 말로 운반한 밀보다 저렴하다. 모든 산업에 걸쳐 이 같은 변화가 확장되었다. -36p
여러 신뢰할 만한 출처를 통해 백 수십 년에 이르는 영국과 미국의 통계를 구한 뒤 여러 통계학자와 함께 그를 연이어 볼 수 있는 자료로 매만지는 작업엔 적잖은 노력이 들었을 테다. 그를 통하여 독자는 역사적 서술로 간단히 접한 게 전부였을 당대 영국과 미국의 경제상황을 개략적으로나마 들여다보게 된다.
그 시대는 그러나 익히 학습한 것처럼 그저 순탄한 성장만은 아니다. 오늘의 시대상과 마찬가지로 여러 부침이 있고, 경기는 확장되다 후퇴하고 부풀다가 꺼져 내린다. 여러 지표, 그중에서도 물가와 금리는 이러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오늘의 한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가 체감하는 것처럼 물가상승은 언제나 민감할 밖에 없는 현상이다. 물가를 실제로 맞닥뜨린 일반 소비자가 그로 인해 피해를 피부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각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들 또한 체제와 상관없이 그 문제로부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세계경제가 물가와 관련해 가장 둔한 반응을 보이는 금본위제를 오래 운용해온 데도 이 같은 영향이 있었을 테다.
한 세기 전에 나온 책임에도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물가상승은 일시적이었다. 금본위제가 유지되는 한 개별 국가 주도의 화폐발행은 제한적일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각 물건이 품귀현상을 겪고, 또 일부 국가가 이해관계에 따라 화폐를 찍어내는 상황이 도래할 때 물가는 급속히 상승하는 현상을 겪었다.
그에 대한 강렬한 체감과 오래 지속되는 후행효과로 인하여 물가상승이 오래 지속된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저자들은 오랜 분석을 거쳐 대체로 물가는 하향세인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단 것을 증명해낸다.
책은 생산성과 화폐발행, 또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물가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선명한 경제규모 아래서 내보인다. 또한 영국과 미국 간 경제력이 교차하는 당대상황을 비교분석하여 해외 국가며 그 신용도, 상호 화폐 간 상관관계 역시 설명하고 있다. 이 또한 한국이 겪고 있는 상대적 화폐경쟁력과 무역이며 신용 문제와 연결지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격의 세기>는 위기를 맞고 있던 당대 경제상황 가운데 현명한 길을 고민하던 이들이 그 방안을 탐구한 작업이다. 이들은 무작정 미래를 향해 덤비거나 현재에서 방황하는 대신, 과거를 분석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드러난 것은 가격과 금리, 대출과 예금,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개념들이 서로 영향을 받는 관계성이다. 그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한 뒤에야 경제를 읽고 바른 선택, 이를테면 투자와 같은 걸 할 조건이 갖춰진다는 인식이 이들에게 엿보인다.
한 세기도 더 전에 출간된, 그것도 그로부터 다시 한 세기를 훌쩍 넘는 과거를 분석한 책을 오늘에 이르러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투자에 열을 올리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더 위험성 높은 투자에 자산을 내던지는 나라. 그러나 경제와 그를 둘러싼 정책이며 외교, 산업, 심지어 역사에 대해선 깊이 있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오늘 한국의 상황이 이 책이 우려한 모습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탓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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