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이란전쟁 비극 위에 피어난 꽃…니키 노주미의 삶
개인전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1979년 이란 혁명 전 작업 세 점
美 망명 후 작업 60여 점 전시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두 번째로 진행하는 이란 태생 미국인 작가 니키 노주미의 개인전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는 작가가 1979년 이란 혁명 이전 작업한 작품 세 점과 이란을 떠나 미국 망명 직후 1981년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60여 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니키 노주미의 작품은 2020년 뉴욕타임스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시위 예술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25선'에 선정되며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 제목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Someone is coming with a flower'는 노주미가 1976년 제작한 첫 모노타이프에 페르시아어로 쓴 문장이자 해당 작품의 제목이다.
곧 오는 혁명을 예견하듯 민주화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았으나, 1981년 작품군에 보이는것처럼 결국 더 극심한 독재 체제의 수립으로 작가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란의 역설적 비극을 담고 있다.
모노타이프는 주로 금속 혹은 석판 위에 직접 유화구나 잉크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에 종이를 덮어 인쇄한 것으로, 회화와 판화의 혼합 공정이라 할 수 있으며 에디션이 없는 유일본인 것이 특징이다.
특유의 우화적인 대형 회화로 잘 알려진 작가는 2018년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가진 국내 첫 개인전에서도 이러한 작품 세계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구상적인 동시에 추상적이기도 한 그의 작품은 등장인물의 신분을 드러내는 정장 및 종교적 가운, 다양한 동식물상, 고대 페르시아 그림 속 장면, 서구 미디어 속 이미지 등의 여러 요소를 아울러 상징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든다.
또한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친지 등의 인물 모델, 사진, 개인적 경험, 페르시아 문학, 신문 스크랩 등 다종다양한 종류의 소재를 창작에 동원하는데, 이는 마치 그가 주변 환경으로부터 인지한 시각 정보가 체화된 무대와도 같다. 절단된 사지, 어릿광대 문양, 연극용 가면, 기하학적 선, 굴절된 평면 등 작품 속 수많은 요소가 서로 줄다리기하며 해소되지 않는 긴장을 연출한다. 이를 통해 서로 상이하면서 방대한 종류의 맥락을 분열시켜 담아낸 작가는 특유의 다의성을 작품을 통해 표출한다.
1981년 모노타이프 작업에서 우리는 회화로 잘 알려진 그의 현재 작업의 시초가 되는 다양한 모티프와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노주미는 즉각적인 모노타이프의 자유로운 표현 기법을 활용해 한층 더 가공되지 않은 정치적 태도, 예술적 욕구, 감정선 그리고 개인사를 담은 장면들을 다양한 작업에 표출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난 1979년은 작가의 삶에서도 그러했듯 이번 전시를 구분 짓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그의 이란 혁명 이전 작품 상당수는 소실됐지만,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1976년 작 세 작품은 이 시기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정치적 저항의 어둠과 희망 양쪽의 이미지를 모두 보여준다.
1980년, 이란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테헤란 현대미술관 전시 초청은 그의 삶을 뒤바꿨다. 120여 점이 넘게 전시된 니키 노주미의 작품은 혁명 이전만큼 혁명 이후 성립된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란 언론은 그의 작품을 이슬람 공화국과 혁명을 배신한다고 공격했고 이내 군중이 관내로 들이닥쳤다.
1980년 9월 22일, 니키 노주미는 테헤란을 도망쳐 나왔고, 그가 떠난 겨우 몇 시간 뒤 그가 이용한 메흐라바드 공항을 이라크가 폭격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노주미는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자신의 작품 120여 점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그의 딸 사라 노주미와 사위 틸 샤우더가 감독한 HBO 다큐멘터리 스릴러 'A Revolution on Canvas'(2023)를 통해 재조명됐다.
테헤란에서 가족이 거주 중인 마이애미로 피신한 작가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짧은 마이애미 생활이 작가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란은 온 나라를 하나로 만들었던 혁명을 무색게 하는 또 다른 탄압의 시대를 맞고 말았고, 자신은 작품 대부분과 고향마저도 뒤로한 채 기약 없이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상실감조차 작가에게서 붓을 놓게 만들지는 못했다. 니키 노주미는 기존의 작품 및 작법에 비해 보다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작풍의 모노타이프를 다수 그려냈다. 호메이니 독재 체제를 벗어나 타향으로 떠나와서도 작가는 저항의 최전선에 섰다.
행진하는 군중 속에 함께하지 못할 때도, 쉼 없이 작품에 매진하며 상존하는 억압을 폭로하는 것으로 망명자가 아닌 자유인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해낸 니키 노주미의 작업은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자 생존을 위한 저항의 연속이었다. 전시는 2025년 1월 12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닭·김밥이어 또 알아버렸네…해외에서 '뻥' 터진 K-간식 - 아시아경제
- '韓 보내주지'…푸른 꽃게 몸살 앓는 이탈리아, 결국 찾아낸 방법 - 아시아경제
- 남편, 블랙박스서 수상한 소리 묻자…아내 "아이스크림 먹었어" - 아시아경제
- 약국서 13년 근무하다 퇴사…개똥 치워 연 3억 넘게 버는 여성 - 아시아경제
- 아들 전여친과 결혼…중국은행 전 회장의 막장 사생활 '충격' - 아시아경제
- “신선한 시신 해부!” 모자이크 안된 시신과 기념사진 공개한 日 의사 - 아시아경제
- '만삭' 걸그룹 멤버, 무대서 격렬한 댄스…3일 뒤 무사 출산 - 아시아경제
- "할머니가 충격받을까봐"…5년간 죽은 동생 행세한 쌍둥이 언니 - 아시아경제
- "결혼하고 6개월 살면 500만원 드려요"…1만명 몰려간 이곳 - 아시아경제
-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 "뭘 했다고 연봉 5000만원 받냐는 사람도"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