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 입고 ‘경찰차’ 타고…“수능 잘 보고 올게요”
서울 반포고·여의도여고 수능시험 현장 스케치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14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구 반포고등학교 앞.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인 이모(18)군이 환자복을 입은 채 시험장에 들어섰다. 이군은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군은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데 남자라면 한 번 와봐야죠”며 “준비한 만큼 열심히 보고 오겠다”고 말한 뒤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다만 이군은 입실 20분 만에 퇴장하며 “포기각서를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군은 한 대학 수시모집에 이미 합격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능은 이날 전국 1282개 시험장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의대 정원 증가에 따라 이른바 n수생 숫자가 늘어나고, 자율전공학부제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시험장에 들어서는 수험생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험생 가족과 친구, 후배 등은 ‘수능대박’을 외치며 한마음으로 이들을 응원했다. 예년처럼 시험에 지각한 수험생들이 경찰차 등을 이용해 헐레벌떡 시험장에 들어서는 진풍경도 이어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고 교문 앞에서 만난 이윤혁(12)군과 서유권(12)군은 “형들이 수능을 본다고 해서 응원 나왔다. 모두 원하는 대학에 붙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반포고 인근에 있는 서원초에 재학하는 학생으로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수험생을 배웅하며 눈물을 보이는 학부모의 애틋한 마음도 보였다. 고태희(44)씨는 아들 이성민(18)군을 시험장에 들여보낸 후 돌아서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고씨는 “고3인데도 설거지를 도와주는 정말 착한 아들”이라며 “주변 친구들을 돕겠다며 심리학과를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꼭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선하(54)씨 부부도 수험생 아들을 시험장 앞까지 바래다준 뒤 포옹했다. 이씨는 “아들이 재수하는 과정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고생한 만큼 원하는 대학교 입학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반포고에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시험장을 깜짝 방문해 수험생 응원에 나섰다. 정 교육감은 “날씨가 춥지 않아서 평소 실력이 잘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여러 학생과 악수했는데 어떤 학생은 손이 너무 차거나 손바닥이 (땀에) 흥건해 긴장한 게 느껴졌다.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실종료 시간인 오전 8시10분이 다가오자, 시험장 앞은 지각을 할까 서두르는 수험생과 두고 온 준비물을 가져온 가족들로 분주해졌다.
이날 오전 8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 교문 앞으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진입했다. 시험에 늦은 수험생을 태운 상태였다. 여의도자율방범대 소속 권기순 대장은 재빨리 조수석에서 내려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줬다. 권 대장은 “학생이 시험장에 늦을 것 같다고 112에 직접 연락했다”며 “여의나루역에서 대기하다가 지하철에서 내린 학생을 바로 태워서 왔다”고 했다.
1~2분 후 또 다른 경찰차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한 수험생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 오전 7시30분쯤 수험생인 동생을 바래다줬던 언니 성재희(27)씨는 ‘수험표를 놓고 왔다’는 동생의 연락에 곧바로 다시 여의도여고를 찾았다. 성씨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서 길가에 세워진 경찰차에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태워주셔서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동생이 조금 놀란 것 같았는데 긴장하지 말라고 응원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시험장 이름을 헷갈려 경찰과 학부모가 헛걸음한 소동도 있었다. 여의도고에서 시험을 치는 학생이 학부모에게 ‘신분증’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버지가 여의도고가 아닌, 여의도여고를 찾은 것이다. 신분증을 받은 경찰은 긴급히 여의도고를 찾아 학생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너무 늦게 시험장에 도착해 입실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재수생 A씨는 이날 오전 8시34분에 서울 서초구 반포고 정문에 도착해 진입을 시도했으나 ‘입실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입실 마감시간은 오전 8시10분까지였다. A씨는 ‘신분증을 두고 온 게 생각나 다녀오다 보니 늦었다’는 취지로 항변했지만, 결국 시험을 볼 수 없게 됐다.
김승연 최원준 한웅희 기자 ki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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