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안이한 판단... 이 사람들은 어쩌나
[도재형]
▲ "사회보험 차별 철폐하라" 2022년 1월 13일 오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라이더에게 확대 적용되는 고용보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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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64년 산재보험, 1977년 의료보험, 1988년 국민연금, 1995년 고용보험의 시행을 통해 명목상 4대 사회보험 체계를 완성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증가한 비정규 노동 및 소득 양극화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확대시켰다. 예컨대 2013년 기준으로 고용보험 가입률은 62.4%에 불과했다. 즉 우리나라는 사회보험 체계를 실질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속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초래한 장애물에 직면한 것이다. 대다수 비정규직을 사회보험에서 배제한 상태가 지속되면,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수립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는 한국 사회정책의 오랜 숙제였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사회보험의 가입 기준을 유연화하여 다양한 노무 제공자를 그 보호 범위로 포섭하는 전략이고, 두 번째는 기여 회피(contribution evasion)를 줄이기 위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이며, 세 번째는 보험료 징수 체계를 통합하여 사각지대를 줄이는 전략이다.
첫째와 셋째 전략의 대표적 예는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이다. 여기에서 정부는 고정된 사업장을 넘어 '일하는 사람' 중심으로 관리되는(portable) 사회보험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고 "모든 취업자에게 보편적 고용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예술인, 특수 형태 고용(아래 '특고') 및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단계적으로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함으로써 모든 노무 제공자를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자영업자에 대해서도 사회적 대화를 거쳐 적용 확대를 추진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나아가 이러한 고용보험 적용 범위 확대와 함께, 모든 취업자를 고용보험에 가입시키기 위한 토대로서 2025년까지 소득 정보 기반으로 고용보험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히며 조세-사회보험 간 소득 정보 공유 및 유사·중복 제출자료의 통합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두 번째 전략은 저소득 노동자와 중소 사업주가 보험료 부담 때문에 비공식 부문으로 일탈하여 사회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는, 사회보험의 기여 회피에 대응한 정책이다. 그 대표적 예로는 박근혜 정부가 2012년 시작한 사회보험료 지원 정책인 두루누리 사업과 문재인 정부가 2021년 도입한 국민취업지원 제도가 있다.
두루누리 사업은 적발과 제재의 수단이 아니라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사회보험의 가입률을 높이고자 하였다. 단일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사회보험 제도에서는 저임금 근로자와 영세사업자가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갖게 되므로, 노사가 담합하여 사회보험에서 자발적으로 배제되는 유인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근로빈곤층을 사회보험 제도로 포섭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를 지원하여 공식 부문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두루누리 사업은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사회보험료 지원 제도로 정착되었다.
국민취업지원 제도는 청년 등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 저소득 장기 실업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고, 취업지원 서비스를 통해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2차 고용안전망으로 설계되었다. 이 제도를 통해 2021년 시행 첫해 43만 명이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를 받고 그중 34만 명이 최대 300만 원의 소득을 지원받는 등, 국민취업지원 제도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취업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안전망으로서 역할했다.
▲ 배달라이더 분노의 행진 배달플랫폼노동조합 주최로 지난 10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배달라이더 분노의 행진'. |
ⓒ 이정민 |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위와 같은 정책과제는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2022년까지 예술인, 특고 등에서 단계적으로 적용 직종이 확대되었으나, 2025년까지 취업자 일반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사회보험료 징수 시스템을 개혁한다는 계획과 관련해선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의 불비로 지원금 지급의 효율성 제고에 어려움을 겪던 경험도 어느새 국회와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 고용안전망 예산 *자료 : 연도별 정부예산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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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편적 고용안전망의 확립은 윤석열 정부도 강조하는 노동 약자의 보호를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 일자리를 상실하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사람보다 더 취약한 노동자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두루누리 사업과 국민취업지원 제도가 근로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인 고용안전망을 제공하고 노동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위와 같은 입법 추진의 무성의함과 예산 축소는 노동 약자에 대한 현 정부의 여러 언명이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한다.
정부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할 때, 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들이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기울인 노력과 코로나19 위기에서 경험한 정책적 난관을 되짚어 본다면, 현 정부가 이렇게 안이한 태도를 취할 순 없다. 고용안전망이 노동 약자를 보호하지 못할 때, 청년들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혁신의 어려움을 회피하며 사회보험은 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확대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필자 소개 : 도재형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회법 박사로 노동법과 사회보험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세번째 고용노동비서관을 역임하며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설계했다. 중앙위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역임했고, 노동법 학회와 사회보장법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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