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산단]⑧녹슨 공장이 예술작품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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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네온사인이 비추는 캄캄한 공간.
20여명이 의자에 앉아 얼굴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헤드셋을 머리에 걸치고 일제히 정면을 응시했다.
예술이 사람을 도시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예술극장과 현대 카탈루냐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칸 프라미스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22@ 혁신지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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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네온사인이 비추는 캄캄한 공간. 20여명이 의자에 앉아 얼굴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헤드셋을 머리에 걸치고 일제히 정면을 응시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어린아이부터 대학생,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 눈앞에는 세계 유명 미술 작품들이 펼쳐졌다. 의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지만, 가상현실(VR) 기술이 이곳을 루브르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으로 만든다.
지난달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이데알 디지털 아트센터(IDEAL Centre d'Arts Digitals)’. 미술, 기술, 음악 등을 결합해 ‘몰입형 미디어아트’를 제공하는 남부유럽 최초의 디지털 아트센터다. 1917년 개관한 낡은 영화관을 개조해 2019년 문을 열었다. 면적 약 2000㎡가 디지털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예술가들이 제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아트센터가 위치한 곳은 바르셀로나 중심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포블레노우(Poblenou)’ 지역이다. 카탈루냐 광장, 고딕지구 등 바르셀로나 인기 관광지에서 동남쪽으로 20여분 차로 이동해야 한다. 포블레노우는 1960년대까지 스페인의 핵심 산업으로 꼽혔던 방직·섬유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이후 탈산업화로 1000개 넘는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떠났다.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한동안 ‘죽은 도시’로 방치됐다.
포블레노우가 지금처럼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2000년대 초 ‘22@ 바르셀로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다. 바르셀로나시와 민간기업 등이 힘을 합쳐 면적 400만㎡(121만평) 규모의 낙후된 공업지역을 과학·첨단기술·문화 중심의 혁신지구로 전환시키는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예술은 22@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22@ 프로젝트를 이끄는 민간 협회 ‘22@ 네트워크’ 산하에는 예술을 담당하는 창의성·디자인·문화위원회가 구성됐다. 예술이 사람을 도시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이데알 디지털 아트센터 역시 이런 측면에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아트센터 관계자는 “하루 평균 700여명이 이곳을 다녀간다”며 “절반은 지역주민, 절반은 외지인이다. 22@ 혁신지구를 방문한 젊은 기업인들이나 대학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콘서트, 뮤지컬, 연극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예술극장과 현대 카탈루냐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칸 프라미스 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22@ 혁신지구에 있다.
포블레노우에서 만난 조르디 세이야스씨(47)는 “과거 공장들이 있던 곳에 이렇게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많은 카탈루냐(바르셀로나가 주도인 스페인의 광역자치주) 사람들이 아트센터 등을 즐기기 위해 이 지역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22@ 프로젝트는 문화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망을 정비했다. 첨단산업·기술단지를 조성하고 주변으로 주거단지와 녹지 공간이 어우러진 ‘콤팩트시티(업무·여가문화·휴식 등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집약해놓은 도시)’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포블레노우 지역은 사회·경제적 활력을 되찾고 있다. 22@ 혁신지구에는 현재 1만2150개의 기업을 비롯해 9개 대학, 3개 기술센터가 들어서 있다. 바르셀로나 국내총생산(GDP)의 14.5%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편집자주
한국에는 버려진 땅이 있다. 넓이만 2449만㎡로 여의도 면적의 5.44배 규모다.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돼있다. 바로 '산업단지' 이야기다. 산단은 1960년대 울산공업단지 개발을 시작으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주역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들어선 탓에 지금은 고질적인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새 산단을 짓는 데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단은 심각한 노후화 문제에 직면했다. 아시아경제는 '버려진 산단' 기획을 통해 국내 산단 현황을 살펴보고 해외 사례를 통해 한국 산단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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