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는 탈중국 공급망의 핵심…지나친 우려는 毒"
"미국내 일자리 창출, 중국 견제 등
한국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부각해야"
전기차·반도체 등과 공동 대응 필요성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전기차 보조금 축소 등으로 한국 배터리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가운데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대미 협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여, 탈중국 공급망에 있어서 한국 배터리 기업의 중요도를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적극 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3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배터리 업계와 가진 간담회에서 "미국 신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축소 또는 폐지를 시도할 경우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대미 투자 실적이나 미국 내 고용 창출을 강조하고 한국 배터리 산업이 탈중국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미국 신 정부에서도 대중 경제 기조는 계속해서 유지 또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기업에는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당선자는 중국에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등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 공급망에서 탈중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신 정부에 적극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북미와 유럽에 이렇다 할 배터리 기업이 출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마저 위축될 경우 중국의 배터리 기업이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에서는 한국 내에서 지나치게 IRA 폐지 등에 대해 우려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협상의 대가인 만큼 우리가 먼저 나서서 약점을 드러낼 경우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며 "오히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가진 경쟁력과 미국에 줄 수 있는 카드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석희 SK온 대표도 이날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언론 등에서 (신정부 출범이) 마치 큰 문제인 것처럼 안 하는 게 좋겠다"며 "위기도 있겠지만 기회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병희 엘앤에프 사장(COO)은 "아직 미국 신 정부의 정책이나 인선이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지금은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그동안 미국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은 신 정부에 상당한 협상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CAPA)은 117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또 발표된 투자 계획이 완료되면 2027년에는 635GWh에 이를 전망이다. 통상 1GWh에 1000억원이 투자비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배터리 기업의 미국 내 투자 효과는 60조원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환경 규제 강화와 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전기차 보조금으로 자국 내 투자를 유도했다면 트럼프 신 정부는 관세 장벽으로 미국 내 투자를 강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AMPC를 폐지할 경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 공장은 미국내 공화당 지역에 포진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 오하이오, 테네시, 애리조나, 조지아에 단독 혹은 합작 공장을 운영중이거나 건설 예정이다. SK온은 조지아, 테네시, 켄터키 지역에 공장을 운영하거나 설립중이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에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내 공화당 의원 18명이 IRA 폐지 반대에 서명하기도 했다. 자기 지역구 내에 투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서다. 이들 중 15명이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자가 IRA를 쉽게 폐지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날 이석희 대표도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더라도 AMPC에는 급격한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국내 배터리 기업이 미국에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은 굉장히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른바 선벨트, 러스트벨트 등 낙후 지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신정부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부회장은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탑재된 것처럼 한국의 배터리 산업과 미국의 국방, 우주 산업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기회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일론 머스크는 신 정부에서 정부 효율성위원회의 수장을 맡게 된다.
배터리 산업뿐 아니라 전기차, 반도체 등 연관 업종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배터리 업계 고위 임원은 "개별 산업도 중요하지만 자동차, 반도체 등 관련 기업들이 정부와 함께 공동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미국 신정부 출범에 대비해 민관 대미협력 전담반을 구성할 계획이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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