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LNG 베팅 중… 韓은 후진 중

윤준식 2024. 11. 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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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LNG 생산·거래 확대 움직임
게티이미지뱅크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브릿지 연료’로서 액화천연가스(LNG)의 역할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미국 등 주요 LNG 생산국은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주요 수입국인 일본과 중국은 장기계약을 통해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트레이딩을 통해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LNG 역할이 급격하게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물량 확보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집권 후 석유·가스 시추를 확대하고 LNG 수출 터미널의 신규 인허가는 재개할 예정이다. 당초 불확실했던 미국의 2030년 이후 중장기 LNG 공급량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카타르는 연간 LNG 생산량을 2035년까지 현재보다 85% 늘어난 1억4200만t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는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지난 2021년 대비 60% 증가한 1억5000만t으로 각각 늘릴 계획이다. 석탄에 비교해 탄소 배출량이 40% 적고, 재생에너지나 원자력이 갖추지 못한 유연한 전력 공급 능력을 갖춘 LNG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란 분석에 기초한 증산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장기적으로 LNG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LNG 수급이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말로 종료되는 장기계약 물량 900만t 중 절반에 못 미치는 360만t을 내년도부터 시작하는 장기계약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발표된 제15차 장기 천연가스수급계획에서 한국의 천연가스 총수요가 지난해 4509만t에서 2036년 3766만t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LNG 발전 비중이 2038년 11.1%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상황에서 장기계약보다 3~15년 기간의 중·단기계약을 활용하려 한다.


전기화와 인공지능(AI)의 영향으로 전력 수요의 급격한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LNG 비중을 섣불리 축소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우영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2038년 전기수요는 당초 전기본의 추산보다 최대 31% 높은 922T테라와트시(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망 확충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수도권에 단기간에 건설이 가능한 LNG 발전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송전망 부족으로 계통 제약 발전(발전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발전사업자가 일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늘어나며, 직도입사를 제외한 LNG 발전사의 가동률은 지난해 상승했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전기본 계획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신규 수요를 충족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짜여졌는데, 실제로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요가 증가하는데 장기계약 물량은 줄어들면 에너지 변동성에 따른 위기에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 기후·지정학적 요인에 따라 LNG 수요가 급증하며 각국이 현물 계약에서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머니게임’이 벌어질 경우 도입 가격은 급격하게 상승한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물시장에서 LNG를 구매해야 했던 유럽의 경우 LNG 수입 물량이 2021년 대비 60% 증가했지만, 구매 비용은 3배 이상 증가했다. 만약 비싼 가격에 LNG를 구매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전력의 적자 부담이 커지고 또다시 전기요금 상승 압박이 커진다.

다행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LNG 증산으로 공급량이 늘어나며 구매자인 한국이 요구하는 가격 도입과 조건을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LNG를 주로 수입해왔던 카타르는 가격 방어를 위해 LNG를 다른 곳에 팔 수 없도록 하는 목적지 조항을 고집하고 있지만, 미국·아랍에미리트(UAE)·오만 등은 해당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C2S컨설팅의 최승신 대표는 “주요 LNG 수입국인 한국·일본·중국 모두 재판매가 어려운 카타르와 계약을 맺는데 구애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 LNG 추가 도입 시 대미(對美) 무역흑자에 따른 통상 압력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부가적으로 기대되는 효과다. 실제로 트럼프의 당선에 각국은 앞다투어 해당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8일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미국산 LNG 구매량을 늘리겠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 역시 석유·가스 수입을 늘려 무역적자 폭을 줄이는 방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LNG 도입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를 놓고는 의견 차이가 보인다. 민간 LNG 사업자들은 ‘전략적 잉여 LNG’(SBL) 제도를 통해 수요 이상의 충분한 LNG 물량을 확보한 뒤 재판매하는 일본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JERA·도쿄가스·오사카가스 등 일본 민간 전력기업들은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에 천연가스 인프라(LNG터미널·가스발전소)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수요의 50%에 달하는 초과 물량을 장기계약·개발 프로젝트 참여·트레이딩으로 싸게 확보하고, 기존 석탄·석유 수요를 가스로 대체하는 국가들에 수출하는 것이다. 김윤경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처럼 민간이 평시에는 재판매를 통해 수익을 거두다 에너지 위기 발생시 해당 물량을 국내에서 사용하면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가격 안정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가스공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LNG 도입량의 80%를 책임지며 대량 계약이 가능한 가스공사의 협상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 LNG 도입사들은 전체 수급의 안정성을 담당할 의무가 없어, LNG 가격이 변동할 때마다 도입량을 조절하며 이윤을 챙기는 ‘체리피킹’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며 “민간 도입사의 LNG 비축 의무를 늘리고 가스공사의 수급 재량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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