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효식의 시시각각] ‘한국 불확실성’ 트럼프는 책임 없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누구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공포심에 빠지기 쉽다. 딱 지금 한국 금융시장이 ‘셀 코리아’ 패닉장에 빠진 모습이 그렇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개미부터 기관투자가까지 트럼프 재선이 한국 경제에 미칠 여파에 대한 두려움을 점점 키워 가는 모양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미 대선 이후 13일까지 한국 증시에서 약 2조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피는 같은 기간 6.2% 급락했다. 펀드 시장에서도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4조8000여억원이 빠져나갔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979억 달러에서 1035억 달러로 약 56억 달러(약 7조8500억원)가 늘었다. 한국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금을 미국이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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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당선 후 ‘셀 코리아’ 패닉장
1기 땐 증시 51% 상승, 수출 늘어
공천 의혹 등 정치 불신부터 풀어야
」
따져 보자. 트럼프 재선이 비이성적 패닉에 빠질 만큼 놀랄 일인가. 2016년 대선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8년 전엔 전 세계가 놀랐다. 미국 경제전문가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가 영국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세계 경제에 진정 불확실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썼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세계인의 절반 이상이 트럼프 재선을 ‘이성적으로’ 예견했다. 적어도 지난 7월 총격 암살 시도 직후 성조기 아래 오른손 주먹을 치켜들며 “싸우자”고 외치는 모습을 본 사람은 그랬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도 중요하다. ‘트럼프 2.0’ 시대를 항해하는 데에는 트럼프 1기(2017~2020)라는 지도가 있다. 트럼프 2기는 1기에 비교하면 훨씬 예측 가능하단 얘기다.
게다가 트럼프 1기 때 실제 한국 경제 성적표가 나쁘지도 않았다. 4년 재임 기간 한국 코스피지수는 무려 50.8% 올랐다. 물론 당선 다음 날엔 코스피지수가 -2.25% 급락했지만 2017년 1월 20일 취임한 뒤 3.1% 상승 전환했다. 대미 수출 역시 2016년 664억 달러에서 2020년 741억 달러로 약 11% 늘었다. 한·미 FTA 파기 위협이 있었고 주한미군 철수 위협,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요구도 받았으며, 미·중 관세전쟁을 벌였던 와중에 그만큼 했다.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이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면 무엇이 불안하길래 한국 주식을 던지고 있을까. 2016년과 2024년 사이 달라진 건 한국 정치밖에 없다. 트럼프 2기의 관세와 무역·투자, 북핵·미사일 대응의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할 한국 지도자 2명은 재선으로 면죄부를 받은 트럼프보다 더 큰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행정부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부인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이어 부부가 함께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와 관련한 공천 개입 의혹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170석으로 국회 입법권을 장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는 15일 공직선거법, 25일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를 받는다. 이 대표가 두 개의 1심에서 무죄 또는 당선무효형 미만의 벌금형을 받는다면 기소된 7개 사건 중 2개의 리스크는 덜게 된다. 반면에 윤 대통령이 ‘공천 개입’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민주당의 2차, 3차 특검법 공세에 새로운 소재만 제공할 경우 리스크만 더 키울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국정지지율 17%를 끌어올리지 못한 채 트럼프 당선인(2025년 1월 20일 이후엔 대통령)과 첫 대면을 할 경우 ‘국민이 불신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줄 게 뻔하다. 자칭 협상 전문가인 트럼프에게 약점부터 잡히고 담판에 나서는 꼴이다.
2006년 타계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977년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모든 위대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당시 국민의 큰 걱정거리에 기꺼이 맞서려는 의지였고 그게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했다. 국민의 근심은커녕 지도자 자신의 문제마저 회피하려고만 해선 국정이 제대로 되겠는가.
정효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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