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국가도 기술리더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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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글로벌 기업 임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성쇠를 가르는 건 무엇인가?"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지금 현대자동차그룹이 수소차 분야에서 1위 기술력을 자랑하는 데에는 미래를 내다본 국가 기술 리더십의 기여도 있다.
한국이 초고속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기업, 학계 등이 힘을 모아 미래를 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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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글로벌 기업 임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업의 성쇠를 가르는 건 무엇인가?”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리더십이다.” 인텔, 메타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분이었다. 인텔이 미국 다우지수에서 탈락하고 경쟁사 엔디비아에 밀린 굴욕의 근본 원인을 리더십 부재라고 진단했다. 기업 발전의 핵심은 기술인데, 이 기술 연구와 투자를 결정하고 지속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시기와 방향을 놓쳤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으로 확대해도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산업 발전의 토대를 닦는 데도 리더십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연구와 전략기술 개발을 지원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 후 관련 제도가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계획이 세워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리더십이 계속 작동해야 재원이 확보되고 연구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만 봐도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을 시작해 83년 고집적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했다. 80년대 중반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을 만들 때 일부 경제학자는 낮은 성공 가능성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당시 이를 추진했던 청와대 비서관은 “앞으로 반도체가 모든 첨단산업에 근간이 된다”며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반도체개발사업단이 만들어졌고 삼성, LG, 현대그룹이 사업단에 참여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 기반은 국책연구기관인 ETRI와의 공조에서 마련됐던 것이다. 88년 2월 4M D램 첫 제품 생산이 성공했다. D램 연구는 정권 교체에도 연속성을 가졌다. 그렇게 D램 개발은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최단기간 내 극복한 대표 사례가 됐다.
친환경 자동차 개발 지원과 투자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는 97년 고체수소를 기화시키는 현대 티뷰론 시제품을 공개했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소차 관련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당시 과학기술부 수장이던 오명 전 장관은 “(폭발 위험성이 큰) 수소를 싣고 다니려면 탱크가 튼튼해야 하는데 이런 건 정부가 미리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은 쓸모가 없지만 10년, 20년 이후에 쓰일 기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현대자동차그룹이 수소차 분야에서 1위 기술력을 자랑하는 데에는 미래를 내다본 국가 기술 리더십의 기여도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 산업과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가. 정부는 지난 8월 ‘국가전략기술 육성 기본계획(2024~2028)’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에 5년 동안 3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 계획을 반기면서도 불안감을 호소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원과 투자의 연속성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다.
노무현정부의 차세대성장동력사업, 이명박정부의 녹색기술,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기술, 문재인정부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연구자들 사이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 목표에 대응하느라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한국이 초고속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기업, 학계 등이 힘을 모아 미래를 그렸기 때문이다. 각 분야 주요 리더십이 산업과 기술 발전을 위해 일관된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산업은 고도화됐고 기술 개발 역시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 차원에서 선제 투자하고 준비할 인프라가 있다. 정부는 그런 국가전략기술 투자가 일관성 있게 장기적으로 지속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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